“역지사지(易地思之)” ― 자리를 바꿔 그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와 《전국책(戰國策)》 등에서 흔히 쓰인 표현으로, 본래는 전쟁이나 외교에서 상대의 입지를 이해하기 위해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인간관계 전반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르침으로 확장되었다.
한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위(魏)나라 재상은 전쟁을 앞두고 장수들에게 “만약 네가 적장이라면, 어떤 전략을 쓸 것이냐”를 물었다. 장수들은 당황했지만, 결국 그 질문이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적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비로소 길이 보였던 것이다.
일상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아침 지하철에서 밀려드는 인파 속에 서 있다 보면, 사람들은 늘 자기 자리만 지키려 한다. 그러나 문 앞에서 애를 안고 선 부모의 발걸음을 잠시 대신해 본다면, 혹은 무거운 가방을 멘 노인의 허리를 상상해 본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몸을 비켜 설 수 있다. 역지사지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전환이다.
현대 사회는 말은 많지만 공감은 부족하다. 상대방의 자리를 경험해 보지 않고도 판단은 쉽게 내린다. 역지사지는 그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지혜다. 상대방의 발에 발을 맞춰 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구의 자리에 서 있는가. 혹은 내 자리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Job談 –브랜딩, 마케팅, 유통과 수출 그리고 일상다반사까지 잡담할까요?
E-mail: brian@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