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이기심, 어떻게 선을 낳는가?기업윤리와 이해타산의 역설적 공존

“세상은 돈으로 돌아간다.”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자본주의를 너무 싸구려로 해석한 셈이다. 진실은 조금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역설적이다.

우리는 흔히 윤리와 이익을 반대편에 놓는다. 윤리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고, 이익은 도덕을 희생하더라도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본주의에서 ‘이기심’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기본 설정이다. 그런데 바로 이 냉정한 설정이 사회 전체에 의외의 선을 낳는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토머스 홉스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 기업의 회의실에서 이 문장은 더없이 현실적이다. 이윤. 더 많은 이윤. 1원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탐욕’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합리’라 칭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기심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유로 이 질문에 답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정육점 주인이나 제빵사, 양조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들리지 않는가? 하지만, 이기심이 오히려 타인의 필요를 채우는 구조. 이것이 자본주의의 역설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다.

 

이윤이라는 계산기, 그리고 그것이 만든 신뢰
기업은 언제나 손익계산서로 말한다. 감정은 예산서에 없다. 하지만 이 정확하고 냉철한 계산이,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예측 가능성’이라는 신뢰를 만든다. 그 기업이 왜 그 행동을 했는지 명확하고,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슈퍼마켓 체인이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할인 판매하는 이유는 윤리 때문이 아니다.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버려질 뻔한 식품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어든다. 이기심이 사회적 선을 만들어낸 것이다.

맞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이익을 위해 일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기심이 우리에게 필요한 식사로 돌아온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윤리의 핵심이다. ‘이기심의 사회적 전환’. 결국 자본주의는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방식으로 서로를 엮어낸다.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은 개인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윤리적 경영은 ‘착한 척’이 아니라 전략이다
오늘날 기업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ESG,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 다양성과 포용. 단지 유행어가 아니다. 소비자와 투자자는 ‘도덕적 기업’을 찾고, 직원은 ‘가치에 동의할 수 있는 일터’를 원한다. 여기에 진심이 없다고? 상관없다. 시장은 기업에게 윤리를 강제하고 있다.

중요한 건 진심이 아니라, 행동이다. 기업의 윤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고객의 신뢰는 곧 매출이고, 윤리적 평판은 투자유치의 전제 조건이다. 다시 말해, 윤리는 계산 가능한 자산이다. 이 얼마나 자본주의다운 논리인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계산이 ‘공정한 게임’ 위에서 이뤄질 때만 긍정적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독점, 담합, 정보 비대칭이 판치는 시장에서는 이기심이 곧 사회적 해악으로 변질된다.
따라서, 기업윤리란 단순히 ‘착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지키고, 투명하게 경쟁하며, 사회적 신뢰를 쌓는 실천이다.
이는 곧, “나의 이익이 타인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가 윤리이고, 어디서부터는 위선인가
문제는 이것이다. 윤리를 계산하기 시작할 때, 그것이 진짜 윤리일 수 있을까?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말이, 실은 소비자 감성 마케팅일 뿐이라면?

우리는 여기서도 다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윤리는 이상주의가 아니다. 현실주의다. 중요한 건 ‘왜’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이다. 동기가 이기적이더라도 결과가 공동선을 만든다면, 그것은 윤리의 또 다른 형태다. 공자의 말처럼,

“군자는 그 결과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나를 위한 윤리가 너를 구할 때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하지만 오늘날, 이윤은 더 이상 윤리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오히려 윤리를 품지 않은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된다. 브랜드 평판, 공급망의 공정성, 직원 복지, 환경 보호. 이것이 곧 이윤의 조건이 되었다.

오늘날 기업가 정신은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민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타적 동기가 아니라, ‘계산된 선의’가 기업 경영의 핵심이 된다.
결국,
“내가 잘 살아야 남도 잘 산다”는 진부한 진리가,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오래 산다”는 새로운 진리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삶에 빚진 존재다.”
— 알랭 드 보통

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기심과 이타심, 계산과 윤리의 경계에서
당신의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 소비자,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윤리’를 묻는다.

그러니 묻자. 당신의 기업은 얼마나 계산적인가? 그리고 그 계산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자본주의 기업은 철저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지만, 이 구조적 이기심이 사회적 필요와 부를 창출하는 긍정적 메커니즘으로 전환된다. 기업윤리는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공정한 시장 질서와 투명한 경쟁, 사회적 신뢰를 실천하는 데 있다. 이타적 이기심, 즉 ‘계산된 선의’가 현대 경영마인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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