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언어유희나 사적인 말장난이 아니다.

정치는 언어유희나 사적인 말장난이 아니다.

문학에서의 언어유희는 단어의 소리, 뜻, 구조 등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유머와 풍자, 그리고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문학적 기법이다. 이는 언어의 다층적인 특성을 활용하여 독자나 청중에게 새로운 시각과 감각적 재미를 제공한다. 언어유희는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텍스트의 함축적 의미를 풍부하게 하고, 독자와 상호작용하며, 비판적 사고를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친구 간의 말장난은 단순히 언어를 가지고 노는 행위가 아니라, 친구들 사이의 친밀감을 키우고 일상에 웃음을 더하는 작고도 소중한 도구다. 이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유머를 공유하고, 긴장감을 풀어주며, 때로는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시키는 특별한 마법과도 같다.

정치인은 어떤가? 최근 한국의 정치와 행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언어유희와 말장난을 뛰어넘어 자기 말을 곡해하고 호도하는 행태이다. 특히 탄핵정국에서 자기 방어를 위해 남발되는 ‘바이든 날리면’ 시리즈는 가관이다, ‘의원’이 아니라 ‘요원’, ‘봉쇄’가 아니라 ‘통제’, ‘제압’이 아니고 ‘질서유지’라는 식의 말장난이 반복되고 있다. 더불어, ‘비상입법기구’라는 표현조차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이는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본질적으로 정치와 행정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이며,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정치와 행정이 말과 단어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사용하여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본인이 작성한 문서나 내 뱉은 발언이 논란이 되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 ‘이런 개념이었다.’,  ‘그런 뜻이 아니다’라는 식의 변명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국민과 언론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예를 들어, ‘봉쇄’라는 단어를 ‘통제’로 바꾸는 순간, 강압적인 조치가 마치 중립적이고 부드러운 조치인 양 포장된다. ‘제압’ 대신 ‘질서유지’라는 단어가 사용되면, 폭력적 진압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마치 공공의 안전을 위한 행위로 해석되게 된다.

이러한 언어의 왜곡은 단순히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행정적 조치의 본질을 왜곡하며,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투명성과 책임성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다.

정치와 행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는 말이 명확하고 정직하게 사용될 때에만 가능하다. ‘의원’을 ‘요원’으로 바꾼다고 해서 국회에서 이루어진 행위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어가 바뀌는 순간, 국민의 시선은 혼란스러워지고, 책임의 주체는 불명확해진다. 언어의 힘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논란을 잠재우는 데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정치 체제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법치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언어의 명확성이다. 법과 정책은 국민에게 명확히 전달되고, 누구나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비상입법기구’라는 표현이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는 말로 해명될 수 있다면, 국민은 그 기구의 본질과 목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투명성과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다.

정치와 행정은 그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따라서 발언과 문구는 단순히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는 해명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문서와 발언은 해석의 여지가 없는 명확성과 객관성을 담보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국민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행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에서 시작해 ‘의원-요원’, ‘봉쇄-통제’, ‘제압-질서유지’와 같은 사례는 한국 정치에서 언어의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언어를 조작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는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 기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은 말장난 뒤에 숨은 의도를 분명히 알아야 하며, 정치와 행정은 이러한 언어적 왜곡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한국 정치와 행정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명확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발언의 모호성과 문구의 왜곡은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이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정직하고 명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단어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왜곡된 의미를 품는다면,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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