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품질은 호의가 아니라 존중에서 드러난다. 말끝마다 폄하가 묻어나고, 부탁은 일방인데 책임은 늘 당신 몫이며, 경계는 가볍게 넘나들고, 필요할 때만 다정하다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애정은 변덕을 견딜 수 있지만, 존중의 결핍은 시간을 적립해도 복구되지 않는다.
놓아도 되는 관계에는 공통의 패턴이 있다. 사과 대신 변명, 요청 대신 요구, 대화 대신 통보. 한두 번의 실수는 인간적이지만, 반복은 구조다. 구조는 설득으로 바뀌지 않는다.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거리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떠남은 공격이 아니라 자기보호다. 마지막으로 한 번, 침착하게 기준을 선명히 말하고(언제·무엇·어떻게가 어려웠는지), 기대를 낮추고 접근 빈도를 줄인다. 연락 주기를 조정하고, 얽힘을 정리하고, 필요한 기록을 남긴다. 복수는 시간을 낭비하고, 침묵은 품위를 남긴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인정하되, 다시 휘말릴 다리를 스스로 태우지 말 것.
존중은 사랑보다 먼저다. 사랑은 선택이지만 존중은 조건이다. 조건이 사라졌다면 선택을 거두는 것이 옳다. 우리가 떠나는 건 사람이 아니라, 나를 훼손하는 방식이다. 떠남이 가능할 때 비로소 더 나은 만남이 가능해진다.
결국 관계의 목적은 서로를 크게 만드는 데 있다. 나를 작게 만드는 관계에서 물러서는 일은 비겁함이 아니라 성숙이다. 삶은 가까운 것들로 채워질 때 깊어진다. 가까울 자격이 없는 것들을 멀리 두는 것, 그게 시작이다.
사랑은 선택이지만 존중은 조건이다. 조건이 무너지면, 선택을 접어라.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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