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관계의 끝일까,
아니면 관계가 더 깊어지는 문일까?
사랑했던 이가 떠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말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그 사람의 이름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다시 불려지고,
그가 남긴 말과 표정, 온기와 눈빛은
우리의 심장 한편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를 사랑했던 자들의 기억 안에서
그는 여전히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죽음을 넘는가?
프랑스 철학자 장-뤽 마리옹(Jean-Luc Marion)은
죽음 이후의 존재를 “사랑의 지속”으로 설명한다.
그에게 사랑은 대상이 아닌 현상이다.
사랑은 오지 않고, 오게 된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사로잡는다.
마리옹은 『사랑의 현상학』에서 말한다.
“사랑은 이성보다 먼저 오며,
의도보다 깊이 작용하고,
사건보다 오래 남는다.”
죽음은 사람의 육체는 가져갈 수 있지만,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사랑은
죽음의 질서 바깥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나’와 ‘너’ 사이에서 발생하는
제3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비가시적이며,
물리적 시간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랑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장場’이 된다.
이 사유는
문학과 종교, 예술, 심지어 대중문화까지
널리 퍼져 있다.
기독교는 이를 ‘영원한 생명’이라 부르고,
불교는 이를 ‘인연의 공덕’이라 부른다.
소설과 영화는 종종
사랑이 죽음을 이긴다는 환상을 보여주지만,
마리옹은 말한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진실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 기억은
그 사람이 떠난 이후에도
사랑하는 자의 존재 구조 안에서 계속 작동한다.
그는 단지 죽은 자가 아니다.
그는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기억, 감정, 윤리, 선택의 기준이 되어
살아 있는 나를 계속 빚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존재의 경계를 넘는다.
그는 사라지지 않고,
단지 형태를 바꿔 지속된다.
누군가의 사랑이 깊고 진실했다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도
사랑받는 이의 영혼 속에서
자기 몫의 존재를 살아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사후 세계를 단지 ‘나의 몫’으로만 보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나를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펼쳐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의 변화다.
그 변화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기억의 방식으로,
기도의 방식으로,
예술과 언어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진다.
그러니
삶이란 단지 나를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 안에서 ‘살아질 나’를 설계하는 일이다.
오늘 당신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작은 이해와 위로, 손길 하나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 사람 안에서 당신을 지탱하게 해줄
사랑의 지속성이다.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다.
그리고 그 초월 속에서
당신은 아직 살아 있고,
그도 여전히 살아 있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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