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死後) 10] 죽음은 나를 향해 오지 않는다, 내가 그를 향해 간다하이데거의 존재철학과 죽음을 사는 태도

[사후(死後) 10] 죽음은 나를 향해 오지 않는다, 내가 그를 향해 간다<span style='font-size:18px;display: block;'>하이데거의 존재철학과 죽음을 사는 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는’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죽음은 나를 향해 오지 않는다.
내가 죽음을 향해 조금씩, 조용히, 매일같이 걸어가고 있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전복이 아니다.
실존철학의 심장을 이루는 진단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의 본질을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다.”

우리는 죽음을 겪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살고 있다.
죽음은 삶의 외곽이 아니라,
삶의 구조적 중심이다.

하이데거는 ‘진정한 삶’(Eigentlichkeit)이란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응시하며 살아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죽음이란 언젠가 일어날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 존재를 각성시키는 거울이다.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말은,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언젠가의 마지막 장면을 향해
의식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자각
을 요구한다.

그 자각이 없는 삶은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규칙 속에서 표류하는
‘비진정성(Unauthenticity)’의 삶이며,
그 끝에는 내 삶을 내가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허무와 침묵만이 남는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죽음을 사유하는 자만이,
자신의 삶을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죽음은 그러므로
우리의 적이 아니라,
존재의 고요한 편집장이다.
우리가 쓴 삶의 원고를
죽음은 마지막 문장으로 다듬는다.

그 문장이 얼마나 진실했는지,
얼마나 내 언어였는지,
얼마나 남김없는 선언이었는지를
죽음은 고요히 검토한다.

삶은 죽음을 품고 있고,
죽음은 삶의 결론이 아니라 완성이다.

그러니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말은
삶을 각성하며 설계하겠다는 선언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방식,
사랑하는 방식,
용서하는 방식,
기억하고 원망하고 기다리는 방식 하나하나가
죽음 이후의 내 세계를 짓는 벽돌이 된다면,
나는 오늘 어떤 재료를 들고 그곳을 쌓고 있는가?

죽음은 더 이상 낯선 공포가 아니다.
그는 내가 수십 년간 사랑해온 것,
두려워한 것,
믿고 외면해온 것들로
이미 나에게로 빚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묻는다.
나는 지금,
죽음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가?

혹은 무심한 삶 속에서
죽음을 조용히 등지고 있는가?

죽음은 나를 향해 오지 않는다.
내가 그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걸음걸이는,
내가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죽음 이후의 공간 속에
하나하나 새겨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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