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라는 가장 잘 팔리는 상품우리는 왜 연출된 ‘날것’에 열광하는가

화면 속 그녀는 방금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머리로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는다. 화장기 없는 민낯, 늘어난 티셔츠, 조금은 어수선한 방 안의 풍경. 잠시 후 그녀는 서툰 솜씨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어젯밤의 소소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 모든 장면은 ‘연출되지 않은 진짜 삶’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배달된다. 이어지는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 리뷰에서 그녀는 광고 모델의 완벽한 미소 대신, 이마를 찌푸리며 제품의 사소한 단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솔직함’에 열광하며 지갑을 연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광고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투박하고 꾸밈없는 ‘진정성(Authenticity)’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타인의 ‘날것’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이 현상은 단순히 새로운 마케팅 기법의 등장을 넘어, 신뢰가 붕괴된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반영한다. 거대 기업과 주류 미디어가 쏟아내는 일방적인 메시지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은 더 이상 권위를 믿지 않는다. 대신 나와 비슷해 보이는 평범한 개인, 즉 ‘옆집 언니’나 ‘동네 형’ 같은 인플루언서에게서 진실의 냄새를 맡는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모든 인간은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통찰했듯, 인플루언서들은 ‘진짜인 척하는’ 연기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인 공간, 즉 ‘무대 뒤(backstage)’를 새로운 ‘무대 앞(frontstage)’으로 전환시켜, 가장 완벽하게 연출된 ‘진정성’을 선보인다. 우리는 그 연기에 기꺼이 속아주며, 소비 행위를 통해 그들과의 유대감을 확인한다.

이러한 열광의 이면에는 현대인의 깊은 고독과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인플루언서의 삶을 구독하며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유사 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를 맺는다. 그들의 일상을 매일 들여다보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동안, 우리는 일방향의 소통을 쌍방향의 친밀함으로 착각하게 된다. 파편화된 공동체 속에서 진정한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언제든 접속 가능하고 아무런 책임도 요구하지 않는 이 가상의 친밀감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우리가 구매하는 것은 립스틱 하나, 영양제 한 통이 아니라, 그 상품을 매개로 한 ‘관계 맺음’이라는 환상 그 자체다.

결국 ‘진정성’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욱 교묘하게 만든 가장 진화한 형태의 전략이다. 인플루언서가 쌓아 올린 신뢰와 친밀감은 곧 그의 가장 강력한 자본이 되고, 이 ‘진정성 자본’은 기업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팔려나간다. 그의 삶 전체가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e)처럼, 인플루언서의 ‘진짜 삶’은 실재를 대체하는 복제품, 즉 상업적 현실을 은폐하는 정교한 기호에 불과하다. 우리는 ‘진짜’를 갈망했지만, 결국 가장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연출된 진정성의 홍수 속에서 우리 자신의 삶이 초라해진다는 점이다. 타인의 완벽하게 기획된 ‘평범한’ 일상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우리는 자신의 서툴고 정돈되지 않은 현실에 결핍을 느낀다. 진정성마저 전시와 경쟁의 대상이 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해답은 그들의 세계를 비난하며 차단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화면 너머의 ‘진짜’와 내 삶의 ‘진짜’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 그들의 연출된 진정성을 소비하며 잠시 위안을 얻되, 그것이 결코 나의 진정한 관계를 대체할 수 없음을 아는 건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진짜’는 누구를 위한 진짜인가? 그리고 이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연출되지 않은 나 자신의 삶을 긍정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은 신뢰가 붕괴된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우리는 인플루언서의 연출된 ‘날것’을 소비하며 고독을 위로받고 가상의 친밀감을 구매하지만, 이는 결국 자본주의의 가장 정교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 현상은 타인의 기획된 일상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게 만들어 또 다른 결핍을 낳는다. 화면 너머의 ‘진짜’와 내 삶의 ‘진짜’를 구분하고, 연출되지 않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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