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먹는다는 건, 욕망을 다스린다는 뜻허겁지겁 밥 먹지 않기, 그리고 식욕과 식탐 사이

식욕은 생존의 본능이다.
배고프면 먹고,
기운이 없으면 먹고,
기쁘면 또 먹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묻고 싶어진다.
“나는 지금 진짜 배가 고파서 먹는 걸까,
아니면 그냥 마음이 허해서?”

허겁지겁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배가 아니라
속이 허전해서 먹는 경우가 많다.
그 공허함은 음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채워야 하는데도
입은 이미 움직이고 있고,
포크는 한 박자도 쉬지 않는다.

식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식탐은 감정이 만들어낸 왜곡된 허기다.
슬픔을 삼키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말로 풀지 못할 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외면당할 때
우리는 음식 앞에서 무장 해제된다.

문제는 배가 부른데도
멈추지 못할 때 생긴다.
입은 멈추지 않는데,
속은 이미 지쳤고,
마음은 더 헛헛해진다.

심리학자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이 욕망을 조절하지 못할 때
자유를 상실한다고 말했다.
그는 말한다.

“먹는 것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무엇도 다스릴 수 없다.”
이 말은 금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조절력’이란,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해하는 힘
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밥을 천천히 먹는다는 건
단지 건강을 위한 습관이 아니라,
내 욕망을 돌아보고
속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연습이다.
포크를 내려놓고
씹는 행위에 집중해보자.
그 안에 ‘충분함’이 있고,
그 충분함이 식탐을 줄이고,
결국 나를 덜 지치게 만든다.

음식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대신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균형 있게 이끄는
하루의 리듬이다.

음식만이 아니다.
일도 관계도 취미도 종교도 그렇다.
천천히,
조금만 더 천천히 씹어보자.
그 느린 리듬 속에서
당신의 감정과 욕망이
어떤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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