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의 단호함, 그 불멸의 힘침묵이 용기가 되지 못할 때

우리는 종종 ‘무사’를 미덕으로 착각한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사는 일이 지혜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침묵은 회피다. 옳고 그름이 명확한 순간에 물러서는 태도는, 결국 그릇을 작아지게 만든다.

1955년 12월, 몽고메리의 버스 안에서 로자 파크스는 단순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어떤 대대적인 연설도, 구호도, 혹은 노골적인 도전도 없었다. 그저 요구에 대한 간결한 답, “아니오”라는 단호한 거부였다. 그러나 이 한마디는 역사에 영원히 새겨진다. 왜일까?

우리는 흔히 사회 변혁을 대규모 집회나 열렬한 구호와 연결짓는다. 그러나 로자 파크스는 그보다 더 깊고 구조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그 ‘자리’를 지키는 행위는 단순한 좌석 점유를 넘어, 인종차별이 제도화된 미국 남부 사회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는 하나의 ‘짧은 불협화음’이었다.

몽고메리 버스는 단순한 대중교통 시스템 그 이상이었다. 그 안에는 인종 분리 정책, 경제 시스템, 그리고 권력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버스 회사의 수입구조는 백인 승객이 우선시되고, 흑인들은 뒤쪽에 밀려나는 ‘사회적 위계’를 기초로 삼았다. 로자 파크스가 ‘한 자리를 지킨 것’은 교통수단이라는 인프라의 경제적 동력을 흔들었고, 인종차별에 기초한 법적·사회적 질서에 균열을 냈다.

그 행위는 사실상 ‘공간’에 대한 저항으로, 일상의 특정한 물리적·심리적 조건을 ‘바꾸는’ 실천이었다. 좌석 너머, 그 자리가 상징하는 구조적 억압의 틀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체계의 중심을 건드리는 지점이었다.

로자 파크스의 ‘아니오’는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의 재조명을 촉발했다. 그 작은 행동이 법정에서 인종차별 버스 정책의 위헌 판결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1960년대 미국 시민권 운동을 전국적 차원으로 확산시켰다. 단순한 개인 저항이 사회 전체의 법적·정치적 구조를 재해석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는 알랭 드 보통적인 사색을 빌리자면, ‘일상의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스템을 흔들며, 궁극적으론 사회 구성원의 윤리적 상상을 확장시키는지’에 대한 또 다른 증거다.

옳은 일을 마주칠 때, 먼저 위험을 계산하게 된다. 평판, 손해, 번거로움, 그리고 고독. 그러나 위험을 계산하는 사이, 옳음은 종종 기회를 놓친다. 대다수가 고개를 돌릴 때 단 한 사람의 ‘예’ 또는 ‘아니오’가 길을 만든다는 사실을 역사는 반복해 증명했다.

물러서지 않는다는 건 공격적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차분히, 그러나 확고히 서는 일이다. 진실을 말해야 할 자리에서 동조의 미소로 얼버무리지 않는 용기. 불의를 목격했을 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시선 따위에 주눅 들지 않는 담대함. 그 태도가 나를 단단하게 하고, 주변을 조금씩 바꾼다.

당신이 오늘 맞닥뜨릴 작은 부당함은 버스 좌석만큼 평범할지 모른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일지, 아니면 차분히 맞설지 결정하는 건 결국 당신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당신 삶의 윤곽선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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