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면 손해 본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 되기 시작할 때는, 나의 ‘예’가 타인의 청구서로 쓰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애덤 그랜트는 《Give and Take》에서 세 인격 유형, 즉 테이커(Taker), 매처(Matcher), 기버(Giver)를 구분한다. 각 유형은 ‘주고받기’라는 사회적 교환 행위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는지를 보여준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장기적으로 가장 성공한 집단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크게 소진된 그룹이 바로 ‘기버’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주는` 태도 자체에만 있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줘야 하는가’에 따라 달라졌다. 이 핵심 지점을 ‘경계 설정’이라는 문제를 통해 확장해보자.
선의와 자아 소진 사이
기버는 타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자원, 시간, 관심을 내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선의를 향한 무한 희생은 결국 두 갈래 길을 연다.
한 쪽은 ‘보호형 기버’다. 이들은 자신의 한계와 에너지를 분명히 알고, ‘줄 때’와 ‘멈출 때’를 정한다. 그 경계는 자신과 타인의 건강한 공존을 가능케 한다. 경계 위에서 주는 행위는 지속가능한 관계를 낳으며, 긍정적인 신뢰와 협력의 선순환을 만든다.
반대로 ‘방임형 기버’는 경계가 없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무조건적 기부는 결국 소진으로 이어지고, 감정이나 신체적 탈진뿐 아니라 심리적 허무와 분노로 귀결된다. 그들은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내적 갈등 앞에 무너질 수 있다.
자기 보호와 타인 배려 사이의 균형
경계 설정은 단순히 ‘거절’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가치를 명확히 하는 자기 보호의 문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통찰이 있다. 첫째, 경계는 ‘나를 지키는 기술’이다. 타인을 돕는 데 있어서, ‘적당한 거리’와 ‘적절한 타이밍’이 없다면 과도한 희생은 필연적이다. 보호형 기버는 자신과 타인의 필요를 동시에 맞추려는 ‘조율자’다. 둘째, 경계 없는 주기는 관계를 왜곡한다. 반대급부 없는 일방적 선행은 관계의 왜곡과 피로, 궁극적으로는 고립을 낳는다. 실제로 경계 없는 기버는 정작 깊은 인간관계에서 소외될 위험도 크다. 즉, 관계는 ‘주고받음’의 건강한 교환을 전제로 한다.
성공한 기버는 경계를 세운 사람
장기 성공의 비밀은, ‘주고받기’ 게임에서 균형점 찾기에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의 질서와 맞닿는다. 보호형 기버는 경계를 설정하여 ‘내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함으로써 타인에게 지속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문화적 배경은 때때로 경계 설정을 가로막는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 불리는 자기희생 강박, 거절에 대한 죄책감, 혹은 ‘기브 앤 테이크’의 경쟁적 압박이 경계를 허문다. 구조주의적 시선에서 보면, 개인의 성패는 그가 속한 관계망 속에서 경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다 결국 얼어 죽는 이솝우화 속 여우는 교육용 캐릭터가 아니다. 우리 안에도 ‘거절이 어려운 친절’이 숨어 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실험을 통해 “호의가 반복될수록 수혜자는 그 가치를 과소평가한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무한정 베푸는 친절은 오히려 상대에게 ‘당연 비용’으로 전가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착함은 어떻게 단단해질 수 있을까. 첫째, 가격표 없는 서비스를 만들지 않는다. 도움을 줄 때는 범위·시간·조건을 명확히 한다. “가능하면 도울게” 대신 “내일 오후 두 시까지 이 부분을 도울 수 있어”라고 구체화하라. 둘째, 상대의 의도를 살핀다. 부탁이 반복되는데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이미 거래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셋째, 거절의 언어를 연습한다. “지금은 어렵습니다만—”으로 시작해 대안을 간단히 제시하면 관계의 온도는 유지되면서 경계도 선다.
애덤 그랜트의 발견은 선의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말한다. 진짜 성공한 기버는 경계를 세운 사람이다. 그들만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남을 살리고, 더 넓은 사회적 생태계에 건강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각자의 인간관계에서 ‘주기’와 ‘멈춤’의 조율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 보호 없는 주기는 지속 불가능한 이타주의이며, 경계 있는 기버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동력이다. 무심코 건너뛰기 쉬운 ‘나와 타인의 선’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나눔의 선순환을 만드는 열쇠다.
“주고 또 주지만, 반드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세상을 움직인다.”
친절은 칼이 아니다. 그러나 칼집이 없다면 언제든 무딘 날로 닳는다. 당신의 선의를 보호하는 첫 장치는 체면이 아니라 원칙이다. 원칙이 세워진 호의는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묻자. 나는 오늘 몇 번의 도움으로 기뻤는가, 그리고 몇 번의 도움으로 지쳤는가. 두 수치가 현격히 차이 난다면, 이제 칼집을 새로 맞출 시간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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