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코딩은 제2의 문해력”이라며,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교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누구나 컴퓨터 언어를 익혀야 하고, 미래엔 대부분의 직업이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재편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23년부터 이어진 전 세계 테크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그 믿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이른바 ‘FAANG’ 기업들조차 수천 명의 개발자를 정리해고했고, 국내외 수많은 스타트업들도 개발 인력을 축소했다. “프로그래머는 영원한 안전직”이라는 통념은 그렇게 무너졌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변화는 따로 있었다. 코딩 자체의 가치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어떤 코딩이 가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이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를 ‘코딩’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문제를 ‘정의’할 줄 아는 사람들
오늘날 개발 현장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단순히 빠르고 정확하게 코드를 작성하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시스템을 분해하고, 사용자의 요구를 기능 단위로 해석하며, 여러 변수를 고려해 가장 적절한 흐름을 설계하는 능력, 즉 프로세스 정의(process design)와 알고리즘적 사고, 그리고 프로시저 설계 능력이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예를 들어, 결제 시스템을 구현한다고 가정해보자. 단순히 “결제 버튼을 누르면 돈이 빠져나간다”는 기능만으로는 실제 서비스에 사용할 수 없다.
데이터베이스 트랜잭션 처리, 외부 결제 API 연동, 사용자 오류 대응, 실패 복구 시나리오, 보안 위협 처리, 로그 기록 등 수많은 경로를 사전에 정의하고, 그 흐름이 견고하게 돌아가도록 전체 프로세스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문제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이제는 개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알고리즘이 읽는 사람, 설계도를 그리는 사람
최근 AI가 인간 개발자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GPT-4와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은 이미 중간 난이도의 알고리즘 문제를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다. 즉, “이런 기능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AI가 자동으로 코드를 생성해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진짜 실력은 코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에게 정확히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명확한 문제 정의, 변수 조건, 예외 상황, 사용 시나리오 등 구조적 설계 능력이 개발자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 된 셈이다.
미국 Elice 보고서에 따르면, FAANG을 포함한 주요 기업들은 코딩 테스트보다 시스템 디자인(System Design) 면접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는 단지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분석하고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개발 환경에서도 달라진 기준
한국 역시 이러한 인식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단순 코드 능력만으로 입사한 개발자들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벽을 만나게 된다.
문제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한 채 기능만 구현하려다, 유지보수 과정에서 치명적인 성능 이슈나 예외 처리를 놓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실무 현장에서는 점점 더 ‘문제 정의력’과 ‘구조 설계력’을 갖춘 사람들이 인정받고 있다.
‘개발자’라는 직함보다는 ‘기획-설계-문제 해결자’로서의 정체성이 강조되는 흐름이다.
당신은 ‘코더’인가, ‘설계자’인가
AI는 이미 많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아직도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바로 그 자리를 인간이 채워야 한다.
결국 프로그래밍의 핵심은 ‘코드를 쓰는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능력’이며,
진정한 개발자는 문제를 정의하는 언어를 가진 사람이다.
당신이 AI보다 앞서야 한다면,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코드를 잘 짜는 것만으로는 시대를 이끌 수 없다.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화하며, 전체 흐름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
AI가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은 결국 ‘생각하는 힘’이다.
이제 코더에서 설계자로, 문제 해결자로 진화해야 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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