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성조기의 이중주,
극보수주의자들의 상징 정치

태극기와 성조기의 이중주, <br>극보수주의자들의 상징 정치

거리를 가득 메운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 이 장면은 한국 현대 정치의 극보수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강렬한 시각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태극기의 자부심과 성조기의 동맹을 한데 엮어 ‘자유와 애국’을 외치지만, 이 이중주는 그저 단순한 깃발의 나부낌이 아니다. 이는 역사적 트라우마, 냉전 시대의 잔재, 그리고 현재의 정치적 불안감이 뒤엉킨 상징적 퍼포먼스이다.


태극기와 성조기: 역사적 트라우마의 상징

태극기와 성조기의 동반은 한국전쟁의 상흔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의 포성이 한반도를 갈랐을 때 미국은 UN군의 깃발 아래 남한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서, 미국은 단순히 군사적 동맹 이상의 존재로 자리 잡았다. ‘자유 진영의 수호자’로 각인된 미국은 당시의 반공주의와 결합해 성조기를 대한민국의 역사적 서사 속에 깊이 박아 넣었다.

이런 배경에서 극보수주의자들이 성조기를 흔드는 것은 그들의 반공 정체성을 선언하는 동시에,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남한을 지킨 공로를 재확인하려는 집단적 기억의 재생산이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감사의 표현을 넘어,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전위대’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다. 태극기와 성조기는 그들에게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위기를 동시에 상기시키는 도구이다.


냉전의 잔재와 미국에 대한 종교적 집착

냉전 시대는 한국 보수 정치의 뼈대를 형성했다. 이 시기, 미국은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맹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원조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군사 독재 정권들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을 단순한 동맹이 아닌 ‘이상적 국가 모델’로 숭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미국은 단순히 강력한 동맹국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성지’로 비춰졌다. 성조기를 드는 행위는 단순한 친미의 표현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를 대변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마치 종교적 의식처럼, 미국에 대한 지지는 그들의 정체성에 깊이 뿌리내린 신념 체계가 되었다.


현재의 정치적 혼란과 보수의 위기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드는 극보수주의 집회의 또 다른 배경에는 현재의 정치적 불안감이 자리한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은 극보수주의자들에게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가져왔다. 탄핵을 주도한 진보 진영을 ‘친북’ 혹은 ‘반미’로 낙인찍고, 이에 맞서 자신들의 애국주의를 증명하기 위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태극기는 한국의 주권을, 성조기는 이를 지지하는 국제적 동맹을 상징한다.

이런 상징 정치는 단순히 국가를 사랑한다는 의도를 넘어, 진보 진영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는 단순한 깃발의 나부낌이 아니라, 정체성 투쟁의 산물이다.


아이러니와 모순

그러나 이 퍼포먼스는 깊은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다. 성조기를 들고 미국에 대한 충성을 외치면서도, 정작 미국이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나 ‘인권’의 가치는 종종 그들의 주장에서 배제된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진보적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갇혀 있는 모습은, 한국 보수주의가 얼마나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 보여준다.

성조기를 들며 외치는 자유와 태극기를 흔들며 내세우는 애국은 과연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일까, 아니면 과거의 트라우마와 위기 속에서 길을 잃은 정치적 향수일까? 그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치지만, 그 목소리는 오히려 그들이 극복하지 못한 과거의 그림자를 드러낼 뿐이다.


깃발 너머의 미래를 고민하며

태극기와 성조기의 이중주는 단순한 깃발의 혼합이 아니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냉전의 잔재, 그리고 현재의 정치적 혼란이 뒤엉킨 상징적 행위이다. 그러나 깃발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극보수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깃발 너머의 가치를 고민하는 일이다. 그들이 흔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김현청 / brian@hyuncheong.kim
   –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브랜드 마스터, 오지여행가,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Leave a Reply

Back To Top
Theme M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