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말이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도구다. 나는 종종 말과 문자를 접할 때, 그 속에 숨겨진 의도와 감정을 읽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추론’이라는 이름의 습관이다. 상대의 말이나 문자를 곧바로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내 판단을 덧붙여 반응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는 상대와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일이 잦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판단을 곧바로 언어로 표출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본의를 오해하거나, 심지어는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는 저자와 독자 사이의 협상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협상은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만 가능하다. 내 생각을 앞세워 상대의 언어를 곧바로 내 방식으로 재단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일방적 선언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말이나 문자를 접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양한 해석과 판단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반응으로 옮기지 않는다. 내가 가진 해석이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언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배경과 맥락이 숨어 있다. 이를 읽어내는 문해력, 말의 뉘앙스와 구조를 파악하는 통찰력, 그리고 직관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한편, 이런 태도는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려는 본능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사회적 소통에서는 오히려 내 판단을 잠시 꾹 눌러두는 인내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는 “이해는 선이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선이해란,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 그 선이해를 넘어서 상대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상대의 말이나 문자를 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내린 판단이 정말 옳은가? 내가 상대의 언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판단을 곧바로 표출하기 전에, 잠시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서 상대의 언어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이는 단순한 소통의 기술이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는 실천적 태도다.
이제, 당신도 상대의 말이나 문자를 접할 때 잠시 멈춰보라. 내 생각을 덧붙이기 전에, 상대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라. 그 침묵이 당신의 소통에 새로운 깊이를 더할 것이다.
상대의 말이나 문자를 곧바로 내 판단으로 해석하고 반응하는 것은 소통의 단절을 부른다.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생각을 잠시 꾹 눌러두는 침묵의 미덕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임을 강조한다.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문해력과 통찰력을 기르고, 상대의 언어를 깊이 들여다보는 실천적 태도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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