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 ―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이다. 중국 한대(漢代)의 문헌에서 비롯된 이 말은 원래 북방 유목민이 기름진 가을을 틈타 남쪽을 침략하던 시기적 경계어였다. 하늘은 높아지고 들판은 여물어가고, 말들은 살을 찌운다. 자연은 풍요로우나, 인간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때.
그러나 이 말은 시간이 흐르며 다른 얼굴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말할 때, 사색과 수확의 계절, 책을 읽고 살이 오르는 계절을 떠올린다.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면의 충만함을 향한 말이 되었다.
가을 들판에 서면 그 말의 유래가 피부에 닿는다. 벼는 고개를 숙이고, 나뭇잎은 붉게 물들며, 하늘은 말 그대로 높다. 그러나 그 고요한 풍요 속에 한 줄기 긴장이 있다. 땅이 비옥해질수록 뿌리는 더 깊이 내려야 하고, 과실이 달릴수록 가지는 휘어진다. 풍요는 언제나 균형을 요구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여유가 생길수록 욕망은 커지고, 시간이 많아질수록 방심이 자란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허기와 방심의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는 풍요를 누리되, 그 풍요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말은 살쪄야 하지만, 사람은 정신이 가벼워져야 한다.
천고마비는 단지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비유다. 높아지는 하늘 아래서 나의 마음은 얼마나 낮아졌는가. 살찐 말의 기세처럼, 내 안의 탐욕도 무겁게 부풀어 오른 것은 아닌가.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Job談 –브랜딩, 마케팅, 유통과 수출 그리고 일상다반사까지 잡담할까요?
E-mail: brian@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