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씨, 시대의 초상 ― 아버지, 남편, 남자로 산다는 것

“학 씨!”
이 한마디에 담긴 씁쓸함, 얄밉고도 짠한 그 얼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부상길, 일명 ‘학씨’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는 권위와 체면, 자기중심성과 이기심을 두르고 살아온, 너무나도 현실적인 한 남자다. 대놓고 가부장적이고, 가족보다 체면을 우선시하며, 아내와 자식의 마음을 몰라주는 밉상. 그러나 그 밉상 뒤에는 시대가 만든 ‘아버지’의 초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나였네, 내가 똥이었네” ― 자기반성과 성장의 서사

학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깎이고, 무너지고, 마침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였네, 내가 똥이었네.” 이 자조적인 한마디는, 그가 단순히 ‘악역’이 아니라, 자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온 한 남자의 고백이다.
그의 변화는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다. 아내와의 이혼, 자식에게 무시당함, 그리고 세월이 남긴 쓸쓸함. 그 모든 실패와 상처 위에서 학씨는 비로소 ‘아버지’라는 이름의 진짜 의미를 깨닫는다.
“사랑을 말로 못하고, 돈 벌어다 주는 게 최고라 믿었던 세대. 그 세대의 아버지들이 표현은 서툴렀지만 마음만은 뜨거웠던 그 모습.”
학씨는 바로 그 세대의 상징이다.

남편, 아버지, 남자 ― 구조와 시대의 굴레

학씨를 밉지 않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가부장제의 마지막 세대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의 권위와 체면을 지키는 것이 곧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그의 방식은 점점 낡고 구시대적으로만 비춰진다.
아내는 점점 멀어지고, 자식들은 더 이상 아버지를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가장’의 자리를 지키려 애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가 남자에게 요구해온 ‘남자 구실’의 민낯이다. 책임, 희생, 그리고 체면.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끝에는 외로움과 오해, 그리고 뒤늦은 후회만이 남는다.

“학씨, 당신도 변할 수 있다” ― 실천적 대안과 질문

학씨를 욕하다가, 어느 순간 울컥하게 된다면, 그건 우리 안에도 ‘학씨’의 그림자가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여전히 가부장제의 유령을 안고 산다. 남자는 책임을, 여자는 헌신을 강요당하며, 서로의 고통을 외면한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이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은 더 이상 권위와 희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진짜 ‘남자 구실’이란, 자기 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변화하는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수와 후회를 인정하며, 더 나은 자신으로 나아가려는 용기 아닐까?

“인간은 자신이 만든 구조의 포로다. 그러나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역시 인간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

학씨,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와 남편, 남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당신의 사랑은, 아직도 체면과 책임 뒤에 숨어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학씨’처럼 뒤늦은 후회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변화의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안의 ‘학씨’를 마주하며

학씨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 우리 삼촌, 그리고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미워하면서도, 결국엔 이해하게 되는 그 사람.

학씨는 단순한 밉상 캐릭터가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아버지의 진짜 모습은, 한 세대 남성의 권위와 무력감, 책임감과 외로움이 뒤섞인 복합적인 인간성이다.

IMF의 파도 속에서도 가족을 부양하려 바다로 나갔던 관식이처럼, 학씨 역시 ‘가장’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뼈가 부서져라 일하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감정과 약함을 숨긴다. 하지만 그 강인함은 곧 고립감과 오해,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쌓인 후회로 돌아온다.

권위의 그림자, 연민의 실루엣

학씨의 일상은 권위와 체면,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연민으로 채워진다. 가족 앞에서는 큰소리치고, 약한 척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나도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시대가 만든 아버지의 고독이 있다.
이런 모습은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도 상처받고 있음을 드러낸다.
관객이 학씨를 욕하다가도 울컥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이유다.
그는 우리 아버지들의 초상, 그리고 우리 자신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실수와 후회의 반복, 그리고 성장의 가능성

학씨가 진짜 아버지로서 보여주는 모습은 완벽함이 아니다. 오히려 실수하고, 오해받고, 때로는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모든 실패 위에서 뒤늦게나마 자기 삶을 돌아본다.
“나였네, 내가 똥이었네.”
이 자조적인 고백은, 자신이 만든 구조와 한계 안에서도 변화와 성찰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아버지란, 결국 실수와 후회, 그리고 성장의 반복 위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학씨의 모습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권위에 기대어 살아온 아버지의 옛 그림자, 아니면 실수와 후회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려 애썼던 한 인간의 진심?
학씨의 진짜 얼굴은, 바로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아버지의 민낯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학씨처럼 후회만 남기지 않으려면, 오늘 당신의 진짜 마음을 가족에게 건네보라.
그것이 아버지의 변화, 그리고 가족의 새로운 시작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