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는 언제나 극적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 극적 전통에 또 하나의 장을 추가했다. 6시간 만의 해제, 이어진 탄핵 정국—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법치’라는 단어를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 법치가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
한국정치에서 법치 담론의 핵심은 이것이다. 누가 법치를 말하는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법치는 진짜 ‘법의 지배’인가, 아니면 ‘법에 의한 지배’인가. 이 구분을 놓치면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함정에 빠진다.
권력자가 외치는 법치의 아이러니
한국정치의 독특함은 권력자들이 스스로 ‘법치 수호자’를 자처한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상계엄 선포 직후 “법치를 바로세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본래 법치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진정한 법치란 권력자를 제약하는 원리이지, 권력자가 국민을 통치하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아이러니의 뿌리는 한국정치사 깊숙이 자리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제의 구조적 병리는 지속됐다. 표면적으로는 삼권분립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릴 만큼 권력이 청와대로 집중되는 구조다.
더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권력 집중이 단순히 제도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천권, 예산 편성, 인사권 등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비공식적 권한들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면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형식적 법치의 덫: 합법적 범죄의 가능성
한국정치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권력자들이 “법대로 하겠다”고 외치면서 동시에 법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해석하거나 변경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는 나치 독일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던 형식적 법치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형식적 법치주의란 ‘법률에 따라 통치하기만 하면 법치’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 접근법의 치명적 결함은 법의 내용은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반인륜적이고 비민주적인 내용이라도, 의회를 통과하고 법률의 형식을 갖추기만 하면 ‘합법’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포고령 1호가 정확히 이런 사례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합법적 계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형식적 법치주의의 전형적 사례다.
실질적 법치의 요구: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기준
이에 대한 대안이 실질적 법치주의다. 이는 법률이 단순히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정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그 내용과 목적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해야만 진정한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오늘날의 법치주의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써 정해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의 목적과 내용 또한 기본권보장의 헌법이념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작동한 것은 어떤 법치였을까?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와 시민들의 즉각적 저항이 보여준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의 작동이었다. 권력자의 자의적 법 해석을 거부하고,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시민사회의 의지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이다.
한국정치의 구조적 모순: 분점정부와 정치적 교착
그러나 개별 사건을 넘어 한국정치 전체를 조망하면, 더 깊은 구조적 문제들이 보인다. 대통령과 국회의 이원적 정통성, 선거주기 불일치에 따른 분점정부, 정당의 제도적 미성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한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제는 책임성의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견제는 주로 5년 후 선거를 통한 수직적 책임에 의존하는데, 국회·사법부·언론 등 수평적 견제기관의 실질적 통제력은 제한적이다. 이는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독단적 정책 결정을 강행할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진영논리와 법치의 정치화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법치 자체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이 각자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법치를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한다.
예를 들어, 야당은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법치 파괴’라고 규탄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입법 독재’나 ‘사법부 장악 시도’에 대해서는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한다. 반대로 여당은 야당의 행태를 ‘법치 훼손’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대통령의 헌법 위반적 행위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옹호한다.
이러한 선택적 법치주의는 법 자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다. 법이 공정하고 중립적인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무기로 인식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시민사회의 각성과 민주주의의 회복력
그럼에도 12·3 사태가 보여준 긍정적 측면도 있다. 시민사회의 즉각적 반응과 제도적 견제장치의 작동이 그것이다. 국회 앞으로 몰려든 시민들, 계엄 해제를 요구한 국회, 탄핵 절차를 개시한 정치권—이 모든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자기 치유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의 인권 전문가들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강해졌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 민주적 반사신경과 견제와 균형의 작동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의 한계와 가능성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개헌 논의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대통령제의 권한 분산, 선거주기 통일, 분점정부 해소 등이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그러나 제도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정치 행위자들의 민주적 의식과 법치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헌 논의조차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계엄의 원인을 대통령제 문제로 보는 쪽은 대통령 권한 축소를, 국회 문제로 보는 쪽은 국회 개혁을 우선시한다. 이런 식으로는 실질적 개혁이 어렵다.
법치를 되찾기 위한 과제
한국정치가 진정한 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개별 정치인의 도덕성이나 특정 사건의 처리 방식을 넘어, 법치를 작동시키는 전체적 생태계를 점검해야 한다.
첫째, 권력 분산과 견제 시스템의 실질화다. 단순히 법조문상의 권력분립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견제와 균형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의 비판적 역량 강화다. 12·3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이다.
셋째, 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 확산이다. 법치가 권력자의 통치 수단이 아니라 권력을 제한하는 원리라는 점을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한다.
한국정치의 법치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그러나 이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우리 모두의 손에 있다. “법이 권력 위에 있는가, 권력이 법 위에 있는가”—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법치를 외치는 모든 목소리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 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답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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