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서로를 ‘마케팅 전문가’라고 추켜세웠다. 미팅 테이블에 앉아 화려한 PPT를 펼쳐놓으며, 마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는 양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우린 다단계 아니에요.”
“방판 아니고 D2C예요.”
“MLM이 아니라 NWM입니다.”
웃기지 마라. 단어 하나 바꿔 이름 붙인다고 본질이 달라지나? 독이 담긴 병에 라벨만 ‘비타민 워터’라고 붙인 꼴이다. 마케팅 업계에서 제법 경험을 쌓아온 내가 보기에, 그들의 정체는 명확했다. 다단계 구조를 치밀하게 설계한 현대판 사기꾼이었다.
이런 자들을 마케팅 전문가라는 반열에 올려놓다니. 마케팅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창출하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착취다.
다단계든, 네트워크 마케팅이든, 소셜 리테일이든, 방문판매든 –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구조가 피라미드라면 그것은 착취다. 이들은 교묘하게 용어를 바꿔가며 소비자를 현혹한다. ‘다단계 판매’라는 용어가 불신의 대상이 되자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포장지로 갈아입었고, 그것도 모자라 ‘소셜 리테일’, ‘추천 마케팅’ 등 끝없이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낸다. 커뮤니티 유통, 혹은 파트너십 플랫폼이라나. 겉은 그럴싸하다. 요즘엔 마치 스타트업이나 브랜드 마케터라도 되는 듯, 포장만 번지르르하게 잘도 꾸며낸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를 들여다보면 그 허상이 드러난다. 네트워크마케팅에서 말하는 ‘인적 그물망’도 결국 다단계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제품 판매가 주된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를 판매원으로 만들어 조직을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의 소수만이 수익을 얻고, 나머지는 그들의 수익을 위한 연료가 되는 구조는 동일하다.
한국의 냉혹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2023년 기준 720만명이 다단계 판매원으로 등록했지만, 실제로 후원수당을 받은 사람은 단 125만여명에 불과했다. 즉, 82.6%는 돈을 벌지 못했다는 뜻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MLM에 참여하는 사람의 99%가 돈을 잃는다는 그 악명 높은 수치가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화려한 언어 뒤의 구조적 기생 이런 사업들의 본질은 ‘제품’이 아니다. 제품은 그냥 핑계고, 구실이며, 허울이다. 실제로 벌리는 돈은 제품을 팔아서가 아니다. ‘사람’을 팔아서다. 하나의 계단 아래 누군가를 끌어들여야 이득이 생긴다. “팔지 말고 사람을 데려와”라는 말이 돌고 돈다. 이건 경제가 아니라, 구조적 기생이다. 타인의 고통 위에 내 수익을 얹는 구조. 다단계는 언제나 상위 1%의 피를 나머지 99%가 흘려야 작동하는 피라미드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정부가 만든 것이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 즉 방판법이다. 이 법은 방문판매, 전화권유판매, 다단계판매, 후원방문판매, 계속거래 및 사업권유거래 등 특수판매에 의한 재화나 용역의 공정한 거래를 규정한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도 제고를 통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방판법의 핵심은 청약철회권이다. 계약서를 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청약철회를 할 수 있고, 계약서에 청약철회에 관한 사항이 적혀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14일 이내에 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방판법이 금지하는 행위들이다. 강요나 위협으로 계약 체결, 거짓 정보로 거래 유도, 주소나 전화번호 변경으로 계약 해지 방해, 청약 없이 일방적 판매 등이 모두 금지된다. 위반 시에는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무거운 처벌이 기다린다.
한국 다단계 시장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23년 기준 총 112개 업체가 4조 9,60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이 거대한 파이는 극소수에게만 집중된다. 상위 10개사가 전체 매출의 78%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부익부 빈익빈’ 구조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이 업계가 번창한다는 점이다. 2023년 전체 매출은 전년대비 8.4% 감소했지만, 판매원 수는 오히려 2.1% 증가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이라며 이 늪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이다.
2008년 리먼 사태 때를 보면 이 현상이 더욱 명확해진다. 당시 모든 유통업계가 침체에 빠졌지만, 다단계 시장만은 2007년 1조 7,746억원에서 2008년 2조 1,356억원으로 무려 25% 성장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악질적 구조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피해자는 ‘사람을 믿은 사람’이다. 취준생, 전업주부, 퇴사자, 재기 실패한 가장, 은퇴한 이들… 인생의 빈틈을 기회라며 비집고 들어온다.
“네가 변해야 해.”
“생각을 바꿔야 돈을 벌어.”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건 가스라이팅이다. 비판하면 부정적인 사람, 회의주의자로 낙인찍는다. 의심하면 “그래서 넌 못 나가는 거야”라며 코웃음을 친다. 마치 사이비 종교 같다. 아니다. 이건 사이비 ‘경제’다.
이들의 가장 비열한 것은 인간관계를 상품화한다는 점이다. 친구, 가족, 동료, 동창, 동호회 그리고 가장 야만적인 종교 커뮤니티가 이들에게는 고객 베이스가 되고 네트워크가 된다. ‘인간관계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신뢰라는 인간 사회의 가장 소중한 자원을 착취의 도구로 전락시킨다.
이들의 모집 전략은 교묘하다. 실업자나 저소득층에게는 ‘경제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야심찬 기업가 지망생에게는 ‘수동 소득’의 환상을 판다. 여성들에게는 ‘자기 사업의 주인’이 될 기회라며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 수사를 동원한다.
왜 이 구조가 반복되는가? 단순하다. 욕망 때문이다. 빠른 부, 쉬운 성공, 적은 노력으로 많은 돈… 그걸 누군가 미끼로 던진다. 그런데 진짜 묻자. 쉬운 성공이 세상에 가능하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세상은 모두 부자여야 하고, 다단계로 돈 번 사람들은 전부 지금쯤 벤틀리 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아래 계층은 대부분 손해다. 피라미드에서 살아남는 법은 단 하나. “더 많은 사람을 속여라.” 이걸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이름을 붙여도 면죄부는 되지 않는다
“우린 합법이야.” 그래서? 법망 피한다고 정당해지는가? 합법이라는 말이 정직함의 증거는 아니다. 마약도 한때 의약품이었고, 노예제도도 ‘합법’이었다. 진짜 문제는 윤리와 구조다. 사람을 끌어들여야만 유지되는 구조. 그 자체가 착취다. 사람이 상품인 사업은, 결국 인간을 쓰고 버리는 일이다.
이제 멈춰야 한다. 다단계는 새로운 이름을 입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속지 않아야 한다. 친구가 권하면 조용히 말해줘야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사람을 돈벌이로 보지 않아.”
그리고 멀리하라. 관계든, 사업이든.
다단계, 네트워크 마케팅, 소셜 리테일… 이름이 무엇이든 구조가 피라미드라면 착취다. 제품은 구실이고, 돈은 사람을 데려와야만 생긴다. 법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도 윤리적으로는 파산이다. 피해는 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된다. 결국, 누군가의 탐욕을 위해 누군가가 버려진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이름의 다단계가 시작되고 있다. 멈춰야 한다. 그 ‘사람 장사’는.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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