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다.
대한민국은 2024년 연말, 마치 심장을 붙든 고요가 깨지는 듯했다.
수십 년 쌓아올린 나라의 품격은 무너지는 듯했고, 샤머니즘적 주문과 기독교적 망상은 공기처럼 퍼져, 진실마저 덮어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 역사에 던지는 발자국처럼,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기득권은 놓지 않으려 했고, 자신의 지키지 못할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거기에 기생하던 유튜버와 유력 인사들이 사방에서 저항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판도를 바꾸었다.
민주주의의 손끝은 그들의 손, 그들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실용과 개혁의 담금질
이재명 정부는 상황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꾸었다.
먼저, 경제다.
13조 8천억 원 규모의 긴급 재정정책을 가동했고,
디지털 시장 투명성 강화를 목표로 온라인 플랫폼법,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노란 봉투법,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상법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코스피는 고평가 갭,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2,900선을 돌파했다.
주주권익 보호 강화, 소액주주 지위 상승, 지배 구조 투명화는 금융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읽힌다.
외교 무대에서도 균형과 실용이란 단어가 선명하다.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의 상징이었던 2018 군사합의를 복원했고,
북한의 선전 풍선을 중단하며, 대화의 장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시아·태평양의 위기 속에서 미국과 일본, 중국 사이에서 실용 외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반응은 놀랍다.
프랑스 안보 연구기관은 이 행보를 “한국이라는 거대 중간자의 기조 재설정”이라 표현했고,
대서양주의 싱크탱크는 “실용 외교가 정당적 통합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국뽕의 온도
— 품격을 회복한 시간
이 나라의 품격이 무너졌던 시간은 짧았지만, 그 물처럼 투명한 강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 투명한 강 위로 새로운 배가 떠올랐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국정 비전 아래,
우리는 품격을 회복하기 위한 첫 노를 저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새로운 항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나라를 뒤흔든 ‘그들’이었다.
그들의 무리한 시도는 오히려, 진실을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그들은 계엄령을 준비했다.
헌법 위에 군홧발을 얹고,
‘내란’이라는 단어를 전략 문서에 적으며,
국민을 ‘진압 대상’으로 보는 눈으로 이 나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공권력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권력 유지를 위한 ‘긴급통치 체계’를 꿈꾸었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시민을 적으로 삼는 질서.
그것은 쿠데타가 아니라 ‘합법의 탈을 쓴 반역’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정직했다.
그들의 서툰 음모와 과도한 욕망은
오히려 이 나라의 깊은 어둠을 드러내는 조명이 되었다.
우리는 그 덕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검찰카르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구조가 정치와 자본, 언론을 길들이고, 정적은 적으로, 아군은 보호받는 권력 질서를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종교의 탈을 쓴 ‘사적 기도회’들 —말씀을 빙자해 권력을 기획하고, 신앙을 내세워 공적 영역을 침범하는 집단들. 그들의 하나님은 공의가 아니라, 정치공작의 비전문가였음이 드러났다.
언론의 조율된 침묵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방조하고, 뒷면에서는 정보 교환과 권력 안배에 참여한 ‘편집된 침묵’의 공범들. 그들은 권력이 아니라, 관계의 일부였다.
문화예술계의 이중 윤리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권력의 눈치를 보고, 정의와 인권을 외치면서도 차기 공모 사업을 위해 침묵한 그들. 침묵이 비겁함인지, 전략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보수-진보 프레임 뒤의 거래들 —정당과 지식인,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조차 ‘침묵할 때와 발언할 때’를 조율해온 공모의 시간들이 이제 하나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썩어 문드러진 병원체, 이름이 붙지 않았을 뿐
그들은 항상 있었다.
권력의 그림자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국익’이라는 말로
지속되어 온 은밀한 기생.
우리는 그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무감각했던 것이다.
계엄 시도는 바로 이 ‘무감각의 벽’을 깨는 계기였다.
그들이 너무 큰 힘을 한꺼번에 쓰려 했고,
그 무리함이 도리어 균열을 만들었다.
감춰졌던 것들이 터졌다.
그리고 우리는 도려낼 준비를 마쳤다.
정상 국가로 가는 길은, 해독을 수반한다
청산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정상 국가가 되기 위해선,
제도를 다시 짜야 하고, 사람을 갈아야 하고,
무엇보다 말과 행위의 거리를 다시 좁혀야 한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남기고 간 언어, 구조, 기생적 질서를 벗겨내는 중이다.
누가 어떤 이름으로, 어떤 예산으로, 어떤 사람을 심어놨는지를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그것을 ‘도려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다시, 광복절
오늘이 광복절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겐 상징 그 이상이다.
해방은 외세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무지로부터, 무관심으로부터, 침묵의 공범 구조로부터도 해방되어야 한다.
그들 덕분이다.
그들이 어둠을 드러냈고,
우리는 그 어둠 위에 다시 구조를 세우고 있다.
빛이 왔기 때문이 아니라,
어둠이 너무 짙었기에, 우리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대한이 살았다
우리의 자존심은 회복됐다.
과거를 청산하고 정상 국가로, 정상성의 위상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의 요람이며, 실용과 개혁이 깃든 희망의 첫 페이지다.
광복절이기에 더욱 의미 깊다.
해방의 기쁨은 정치적 해방을 넘어, 정신의 해방을 말한다.
우리는 다시 서 있다.
혼돈을 지나, 우리가 우리를 지키며 쌓아올린 품격 위에.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2024년 말, 계엄과 내란을 기도한 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리한 시도는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검찰카르텔, 종교를 빙자한 권력 기획자들, 침묵하는 언론, 기생적 문화예술계—
이제 우리는 이름 없는 병원체들을 발견했고, 도려낼 준비를 마쳤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전환이 아니라,
국가 윤리와 공공성의 회복이다.
2025년 광복절, 우리는 또 하나의 해방을 경험하고 있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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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brian@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