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해야 할 자리는 그곳이 아니야.”
한 번도 누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허락해준 적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어렸을 적 교회에 처음 나갔을 때,
성경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 했고
예수는 “누구든지 내게 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믿음의 공동체에서 나는 서서히 배워야 했다.
여자는 웃으며 섬기고,
남자는 단상에 서서 설교하는 것.
여자는 기도하고 울며 감동을 나누고,
남자는 이끌고 결정하는 것.
누가 그렇게 가르쳤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누구라고 답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공기’는 내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가끔은 나 자신을
꾸짖는 목소리로 변해버렸다.
“그건 남자가 할 일이야.”
“너무 나서지 마.”
“기도나 열심히 해.”
종교는 말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종종 평등이
‘질서’라는 이름으로 재배열되었다.
여성은 질서 속의 하위 항목이었다.
집에서는 아내로,
교회에서는 권사로,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한 성도 1번으로.
순종, 헌신, 희생.
이 세 단어는 여성의 미덕이자,
동시에 감옥이었다.
무서운 건,
이 모든 것을 내가 ‘믿어버렸던’ 사실이다.
그것이 옳은 줄 알았다.
그렇게 살아야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내면화는 강요보다 강하다.
이제 더 이상 누가 나를 억압하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나를 가두고, 절제하며,
눈치를 본다.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다.
하지만 그 열정은 종종,
리더십이 아니라 ‘봉사’로만 환원된다.
기도 모임은 여성이 꾸리지만,
회의는 남성이 주재한다.
사랑은 여성이 책임지고,
결정은 남성이 내린다.
그게 교회라는 공동체의 풍경이다.
그런데 질문해보자.
정말 신은 그런 역할을 나누셨을까?
복음의 본래 의미가
구별이 아니라 통합이고,
위계가 아니라 섬김이라면,
왜 우리는 그것을 ‘성별’이라는 프레임에
가둬야 했을까.
믿음은 자유였다.
사랑은 해방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순종만 배웠을까?
우리는 이제
이 모든 내면화된 질서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신이 원하시는 건,
누구의 침묵도, 누구의 억눌림도 아닐 테니까.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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