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實] 박탈의 시대, 박탈의 성별경제 성장의 그림자

누군가는 이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 말한다.
누군가는 한강의 기적을 입에 올리고,
누군가는 1인당 GDP 수치로 자부심을 삼는다.

하지만 그 번영의 숫자 뒤에
정작 이름 없이 사라진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의 주인은, 대개 여성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압축적이었다.
그러나 그 압축의 힘은 누군가의 ‘지연된 삶’ 위에 쌓였다.
가장 먼저 집을 포기한 사람,
가장 늦게 밥을 먹은 사람,
가장 오래 가사와 육아에 묶인 사람.
그들은 국가가 호출하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났고,
이름 대신 ‘엄마’, ‘며느리’, ‘아내’로 불렸다.

그들의 노동은 계측되지 않았고,
그들의 희생은 수치화되지 않았다.
국가 통계에는 없지만,
그들은 국가를 지탱한 인프라였다.

‘가족을 위한 헌신’이라는 말로 미화된 노동은,
사실상 무급의 생산활동이었다.
한 여성의 몸과 시간이
자녀의 학업을, 남편의 경력을,
가족의 평판을 지탱하는 데 사용되었다.

가정은 남성의 사회 진출을 위한 후방기지였고,
여성은 ‘조용한 병참기지’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전쟁이 끝난 후,
메달은 남성의 가슴에만 달렸다.

여성들은 여전히 덜 벌고,
더 오래 일하고,
은퇴 후 더 가난하다.
이것이 박탈의 시대가 만든 박탈의 성별이다.

“네가 선택한 삶 아니었느냐”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회피다.
그 선택이 진짜 선택이었는지,
그 삶에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지를
묻지 않는 한, 이 말은 폭력이다.

그들은 국가의 성장에 기여했지만,
성장의 보상은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구멍 나 있고,
경력단절은 개인 탓이 되었으며,
시간제 노동은 유연한 게 아니라 불안정한 것이었다.

박탈은 단지 ‘잃음’이 아니다.
박탈은 원래 가져야 했던 것을
제때, 정당하게 받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더 뼈아프다.

이제 우리는 묻고 정리해야 한다.
누구의 시간으로 경제가 세워졌는가.
누구의 몸이 가족을 지탱했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을 돌려주었는가.

지금이라도 필요한 것은 ‘보상’이 아니라 ‘재정의’다.
여성의 노동을 가치로 다시 쓰고,
그들의 시간이 경제의 언어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성장이다.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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