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감정도 연기하는 세상: ‘괜찮아요’라는 피로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짧은 말 하나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덮여 있는지를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걸 너무 자주 말하는 자신에게도
슬며시 지쳐간다.


‘감정노동’은 어느새 특수한 직군의 용어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서비스업 종사자만이 아니라
엄마도, 선생님도, 직장인도,
모두가 감정을 연기하며 하루를 버틴다.

속은 끓어도 웃어야 하고,
눈물이 나도 삼켜야 하며,
화를 내도 되는 순간에도 “괜찮아요”를 외쳐야 한다.

그래야 “예의 바른 사람”, “좋은 사람”,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는 이제 하나의 포맷이 되었다.
지나치게 익숙하고, 지나치게 무심한 말.
상대가 진심으로 걱정했든,
형식적으로 물었든,
대답은 늘 같다.
“네, 괜찮아요.”

이 말은 감정의 방탄복이다.
상처받기 전에 내 감정을 감추는 방식이며,
질문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한 방어막이다.
하지만 그 방탄복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질식하고 있다.


감정은 숨겨질 수 있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쌓이고,
말해지지 못한 마음은 언젠가 터진다.

‘진심 없는 공감’은
관계를 안전하게 유지시켜주는 듯하지만,
정서적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모두가 ‘위로’를 말하지만,
정작 아무도 위로받지 못하는 사회.
모두가 ‘공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계.


진짜 공감은
‘괜찮아요’가 아니라
“지금, 정말 괜찮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 말을 듣고도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숨을 쉰다.

감정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
웃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버림받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은 아직 멀지만,
그 세상에 가까운 사람은
우리 주변에 한두 명은 있다.


오늘 당신이 말한
“괜찮아요”가
진짜 괜찮아서가 아니라,
참아야 해서 나온 말이라면—
그 말 뒤에 당신의 진짜 마음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적어도 스스로는
“나, 오늘 좀 힘들어”라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감정도 연기해야 하는 세상,
그 속에서 무대 위 주인공은 늘 외롭다.
관객석에서 박수 대신
한 사람만이라도
조용히 안아주는 사람,
그런 관계 하나면
오늘도 조금 덜 피곤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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