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는 바람에 몇 시간 동안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마침 그 사이에 몇 통의 전화가 왔고, 어김없이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말이 따라왔다.
심지어 한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이 전화 안 받으면 되냐”고, 어딘가 화가 난 듯 따졌다.
잠깐의 연결 부재가 이렇게까지 불편과 오해를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늘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즉시 반응해야 하며, 켜져 있어야 신뢰받는 사람.
우리는 점점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건 정상인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비정상을 정상처럼 살아온 결과일까?
스마트폰 없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묻는다.
“왜? 불편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끔은 그 불편이 오히려 자유를 말해줄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일부 도시들에서는
‘디지털 안식일(Digital Sabbath)’을 실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휴대폰을 꺼두고
연결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한 이들 중에는
실리콘밸리 출신 부모들도 있다.
아이폰과 SNS를 만든 기술자들이 정작 자기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
기술을 만든 이들이 기술의 중독성과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느림의 철학』에서
디지털 과잉이 인간관계의 깊이를 얕게 만들고,
자기 존재감마저 희미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보가 많을수록 우리는 외롭고,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는 지친다.
또한,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서로(Henry D. Thoreau)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삶을 더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폰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 역시
단절이 아니라, 단순함을 선택한 것이다.
스마트폰은 분명 편리하다.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꺼도 되는 물건’에서 ‘절대 꺼지면 안 되는 기계’가 되었을 때 시작된다.
우리는 이제 전화를 늦게 받아도,
카톡에 답이 조금 늦어도
무례하게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대화는
항상 즉각적인 응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템포 늦은 응답이 진짜 진심을 담을 수 있게 만든다.
오늘도 스마트폰 화면을 몇 백 번 들여다보며
뉴스를 읽고, 문자에 답하고, 댓글을 달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
그러나 진짜 연결은
와이파이 속도가 아니라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여백에서 시작된다.
문명의 발전은 ‘더 많이 연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여백’을 확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연결을 끊을 수 있는 선택권,
침묵을 허용하는 문화,
느림을 지켜주는 여유.
휴대폰을 잠깐 꺼놓는다고 해서
당신의 신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용기다.
“꺼도 되는 자유.”
이 시대가 잃어버린 마지막 품격일지 모른다.
배터리가 꺼졌던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오히려 나 자신과 가장 오래 통화했다.
그건 생각보다 좋은 대화였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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