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당신의 눈물은 몇 클릭입니까?감정도 재화가 되는 시대: 

어느새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바꿔 살아가고 있다.
슬픔은 콘텐츠가 되고,
눈물은 조회수가 되고,
공감은 유통 가능한 포맷이 된다.

누군가의 불행은 드라마보다 더 흥미롭고,
누군가의 아픔은 브이로그 속 배경음악처럼 편집된다.
그리고 우리는 스크롤을 내리며
감정 하나하나를 재빨리 소비한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로 위로를 남기고,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마치 감정을 장바구니에 담듯이.

이제 감정은 콘텐츠다.
아니, 콘텐츠를 넘어 하나의 ‘화폐’가 되었다.
‘감동주의’, ‘찡함주의’, ‘오열주의’ 같은 말들이
영상 제목 앞에 붙는 걸 보라.
감정은 기획되고,
연출되고,
상품으로 포장된다.

그 결과,
진짜 감정은 어색해졌고
진심은 오히려 덜 팔리는 시대가 되었다.

2000년대 초, 광고학자 케빈 로버츠는
브랜드의 미래는 ‘로브마크(Lovemark)’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감동을 설계하고,
공감의 서사를 만들고,
우리를 정서적 동조의 회로에 끌어들인다.

우리는 그렇게 감정마저도 브랜드에 빌려주며 살아간다.
나의 분노, 나의 슬픔, 나의 위로는
어느새 누군가의 수익이 된다.

문제는 이 ‘감정의 시장화’가
점점 더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공감할 일은 넘치지만
공감할 마음은 점점 고갈된다.

‘감정 노동’이라는 말은 더 이상 직장인만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는 친구에게도, SNS 팔로워에게도
늘 괜찮은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
심지어 슬플 때도
‘너무 슬프지 않게’,
기쁠 때도
‘불편하지 않게’ 조절해야 한다.

웃는 얼굴 뒤에,
눈물의 타이밍마저 계산되는 삶.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감정의 지성』에서 말했다.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화를 내는가,
어떤 장면에 눈물을 흘리는가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신호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감정이
콘텐츠 포맷에 맞춰 줄을 서게 된다면,
우리는 점점 타인의 서사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척’에 길들여질
위험이 있다.

진짜 슬픔은 팔리지 않는다.
진짜 분노는 무거워서 바이럴되지 않는다.
그래서 진심은 종종 가려지고,
가짜 감정이 더 큰 박수를 받는다.

감정은 원래
상업이 아니라 삶의 내력이어야 한다.
내가 사랑했던 것,
지나온 계절,
지켜낸 사람들.
그 속에서 쌓인 감정이야말로
누구에게도 팔 수 없는
나만의 내면의 자산이다.

그러니 묻는다.
당신의 눈물은 지금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그건 진짜 당신의 감정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좋아요 장부에 적힌 숫자인가.

이제 우리는
팔리지 않을 감정,
유통되지 않을 진심을 지켜야 한다.
그건 이 시대에서
우리를 인간으로 남게 해주는 마지막 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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