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기준이 아니라 무기가 되었다결벽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망가뜨릴 때

지도자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기준은
도덕이 아니라 결벽(潔癖)이다.
더 깨끗하고, 더 완벽하며, 더 흠 없는 사람만이
권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신념.
그것은 언뜻 옳아 보이지만
사실상 현실 정치와 시민사회 모두를 위축시키는 위험한 잣대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정책보다 인성 검증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고,
정무보다 사적 흠결을 파헤치는 일에
정치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잣대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무기로 작동한다.

문제는,
그런 도덕주의의 정치문화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누구든 흠이 있고,
살다 보면 실수도 있고,
과거에는 몰라서 한 선택도 있다.
정치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절차와 제도로 견제하고 보완하며,
시민의 감시 속에 통제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완전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다룰 수 있는 시스템이 핵심
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제도를
‘윤리적 거세의 도구’로 사용한다.
수치심을 덧씌우고,
심판을 요구하고,
도덕을 무기로 휘두른다.

결과는 무엇인가?
유능하지만 덜 완벽한 이들은 정치에서 사라지고,
완벽한 척은 잘하지만 유약한 이들이
정치를 점령하게 된다.
도덕적 흠결이 없는 대신,
정책과 결단력이 없는 정치인들

국가를 이끌게 되는 것이다.

결벽의 문화는
국가 운영을 마비시키고,
시민의 정치 혐오를 심화시키며,
정치를 연극으로 만든다.

지도자는
결백한 존재일 필요는 없다.
책임질 줄 알고,
제도와 권력의 한계를 인식하며,
실패했을 때 물러날 줄 아는 사람
이면 족하다.

민주주의는
사람의 도덕성보다,
제도의 투명성과 시민의 견제력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질문을 되묻기 시작해야 한다.

“정치는 무죄인 사람의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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