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빠르게 말하며,
너무 자주 선을 넘는다.
댓글 창에서, 유튜브 영상에서,
뉴스를 향한 반응,
이웃을 향한 언어,
심지어 자기 자신을 대하는 말투까지도
점점 거칠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격렬한 시대인데
정작 깊이 있는 말,
천천히 곱씹는 생각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
사유보다 감정이 먼저 발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감정이 사유를 대체해버린 시대다.
‘왜 화났는지’보다는
‘얼마나 화났는지’가 더 중요해졌고,
‘무슨 말인지’보다
‘그 말에 상처받았는지’가 더 주목받는다.
그 결과,
사실은 왜곡되고,
맥락은 잘려나가며,
생각은 감정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SNS는 이 흐름을 가속화했다.
트위터(현 X)의 280자,
유튜브 쇼츠의 30초,
인스타그램 릴스의 몇 초 안 되는 장면 속에
우리는 우리의 분노를 요약해서 내보낸다.
하지만
사유란 요약될 수 없는 과정이고,
분노는 늘 편집된 진실을 택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는 비판보다 노출을 원하고,
사유보다 반응을 갈구한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인간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리액티쿠스’로 바뀌어버린 풍경.
언젠가부터 사유는 ‘답답한 것’이 되었고
차분함은 ‘느린 것’이 되었고
조심스러움은 ‘입장 없는 것’으로 오해받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진짜 깊은 사유는 늘 조용히 자라고
의미 있는 말은
오랜 침묵 끝에 맺힌다.
우리는 지금
사실보다 감정이 강하고,
진실보다 속도가 빠른
위험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그 자리는 목소리 큰 사람이 차지하고,
묵직한 사유 대신
자극적 리액션이 여론이 된다.
하지만,
모두가 고함치는 세상에선
작은 속삭임이 더 멀리 간다.
모두가 분노할 때,
한 사람의 사유는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힘이 된다.
사유는 느리고,
때로는 불편하며,
당장은 외로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긴 호흡의 사유 없이는
진짜 언어도,
진짜 관계도,
진짜 사회도 없다.
오늘, 그저 ‘화나는 뉴스’ 대신
‘왜 그런 일이 반복되는가’를 묻는 일.
그것이 사유의 시작이다.
분노는 쉬우나,
생각은 품격이다.
지금, 그 품격이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무엇을 세워야 할까?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mail: brian@hyuncheo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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