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입고 있는 옷이 너다.
네가 탄 차가 너다.
네가 찍어 올리는 여행지가 너다.”
누가 그런 말을 가르친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소비로 자기 자신을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 좋은 것을 소비할수록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고,
비싼 것을 가질수록 존중받는 세상.
그런데 문득,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사고 있는가?
혹시, 나는 나를 팔고 있는 건 아닐까?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말했다.
“현대인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만들어내는 ‘의미’를 소비한다.”
실제로 우리는 핸드백을 살 때 가죽을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브랜드가 상징하는 계급, 취향, 성공을 산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길 위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는 건 똑같지만,
누군가는 그 속도를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증거로 여긴다.
소비는 단순히 돈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이제는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가 되었다.
SNS는 이 흐름에 불을 질렀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사고, 어디서 먹고, 누구와 찍었는지를
늘 ‘보여주기 위해’ 소비한다.
‘소유의 기쁨’보다 ‘타인의 반응’이
더 중요한 소비의 동기가 되어버렸다.
미국의 소비사회학자 줄리엣 쇼어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인의 소비는 필요가 아니라, 비교 때문이다.”
다른 이와의 간격을 줄이고 싶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산다.
심지어 필요하지 않아도,
지금 나의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서
새로운 소비로 덧칠해간다.
그러나 그 소비의 끝엔
종종 공허함이 있다.
물건은 늘어나는데,
나는 줄어든다.
물건은 새로워지는데,
삶은 진부해진다.
오늘도 우리는 무언가를 산다.
무언가를 클릭하고, 결제하고, 개봉한다.
그 순간은 짜릿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그 짜릿함은 어느새 익숙한 또 하나의 짐이 된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나는 진짜 나를 위해 사고 있는가,
아니면 남을 위해 팔리고 있는가.
진짜 나를 보여주는 건
무엇을 소비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거절했느냐에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열광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내가 오래 아끼는 물건 하나가
나를 말해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소비를 통제하는 삶이다.
이 시대의 용기는
사는 용기보다
사지 않을 수 있는 용기다.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에서
보지 않아도 충분한 삶으로.
그 전환의 지점에
진짜 ‘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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