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말로 움직인다.
그러나 말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말을 해석하는 자들의 권력이다.
정치인의 한 마디보다,
그 말을 어떻게 ‘해설하느냐’에 따라
민심은 분열되거나 오도되고,
진실은 증발하거나 조작된다.
우리는 지금
정치인이 아닌 정치 해설자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유튜브의 썸네일, 방송의 클로징 멘트,
SNS의 30초 클립이
민심을 만들고 여론을 요리한다.
그 해설에는 책임이 없고,
따라붙는 것은 조회수와 광고 수익뿐이다.
해설의 권력, 책임 없는 영향력
과거엔 언론이 말의 출처였다면,
지금은 개인 해설자가 말의 권력자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보를 푸는 사람”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짜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실수는 무한 확대되고,
누군가의 왜곡은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진다.
정치는 요약되고,
사람은 이미지로 포장된다.
그 해설에는 윤리가 없고,
정치적 책임도 없다.
그저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은 사적 감상으로 면책된다.
정치와 미디어의 결탁은 새로운 선동의 구조를 만든다
과거의 선동은 마이크와 구호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자막과 자극적인 톤이면 충분하다.
정치는 말을 던지고,
미디어는 그 말을 자르고,
해설자는 그 말의 의도를 짐작한 뒤
자기편의 설명을 덧붙인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정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의 편을 따르게 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코멘터리 독재의 현실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실은 조각나고,
판단은 대리되고,
정치는 사라진다.
말은 해석될 수 있지만, 조작되어서는 안 된다
진짜 위험은
정치인보다 해설자가 더 유명해지고,
발언보다 해설이 더 많이 소비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본질은 ‘퍼포먼스’가 되고,
해설은 그것을 감상하는 **‘권력의 시청각 자료’**가 된다.
어떤 말은 고의적으로 오역되고,
어떤 장면은 배경 없이 확산된다.
의도는 묻히고, 감정만 살아남는다.
이것은 정치적 소통이 아니라
정치적 소비이며,
그 소비에는 윤리의 뿌리가 없다.
정치 해설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을 위한 해설이어야 하고,
설명 그 자체가 권력이 되어선 안 된다.
정치 코멘터리는
‘누구 편이냐’보다
‘무엇이 진실이냐’를 묻는 자리여야 한다.
윤리가 빠진 해설은
정치보다 더 위험한 정치가 된다.
이제 우리는
정치의 말보다,
그 말을 말하는 자들의 태도와 책임을
더 날카롭게 들여다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