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갈등과 증오를 소비하는 대한민국의 초상계엄령과 탄핵으로 찢긴 한국 사회, 왜 모두가 폭력의 공범자가 되었는가

최근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뜨겁다 못해 잔혹해졌다. 비판과 견제를 넘어, 특정 정치 지도자를 의도적으로 희생양으로 삼아 집단적으로 공격하고 상처를 내는 현상이 너무도 일상화되어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적이 되고, 그 적은 반드시 악이어야 하며, 그 악에게는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정당화된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정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막론하고, ‘희생양’을 찾아내 공격하고 소비하는 일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몰락과 고통 그 자체를 소비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누군가가 실수를 저지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비난을 퍼붓는다.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추락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를 희생시키며 우월감을 느낀다.

고대에는 부족의 평화를 위해 짐승을 바치거나 이방인을 희생시키는 의식이 존재했다. 중세에는 마녀사냥이 있었고, 현대에는 SNS의 공개 처형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군가의 잘못을 찾는다. 그리고 그 대상에게 자신의 불안과 불만을 투사하고 소비한다. 누군가가 악당이 되면, 나머지는 일시적으로 결속력을 갖고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뉴스 미디어는 갈등을 부풀리고, 유튜버들은 논란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며, 사람들의 분노를 가장 빠르게 현금화한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사회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집단이 특정 대상에게 모든 죄와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제물로 삼는 행위가 오랜 인류 역사 속에 반복되어 왔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적 갈등과 콘텐츠 소비 형태는 정확히 이 구조를 따르고 있다. 특정 인물을 희생양으로 지정하면, 그 순간 사회는 일시적으로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고, 사람들은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로 비난에 가담하며 느끼는 집단적 희열은, 그저 개인적 스트레스 해소를 넘어, 사회적 결속을 확인하는 의식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집단적 희생양 메커니즘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그저 특정 인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갈등의 원인을 덮고 감추기만 할 뿐이다. 한 인물이 추락한 뒤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끝없이 같은 폭력을 반복하게 된다.

현대 콘텐츠 시장 역시 이를 부추기고 있다. 미디어는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위해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매일같이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다니며, SNS는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이제 콘텐츠의 품질은 얼마나 진실한가보다 얼마나 자극적인가, 누군가의 몰락을 얼마나 통쾌하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평가된다.

이렇게 콘텐츠 소비는 폭력적 의식으로 변질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갈등의 근원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분노와 경멸의 감정만을 극대화하여, 그 감정 자체를 상품으로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콘텐츠의 힘은 희생양을 지정하는 폭력이 아니라, 대화와 이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에 있다. 지금 우리의 시대에 필요한 콘텐츠는, 누군가를 정죄하며 집단적 쾌감을 얻는 ‘제물의 콘텐츠’가 아니라, 갈등의 복잡성을 직시하고 불편한 진실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콘텐츠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 단지 그 순간의 긴장만을 해소할 뿐이다. 그러나 그 긴장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더 큰 폭력으로 돌아온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갈등과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과 이해를 통해 진정한 사회적 결속을 회복하는 것이다. 콘텐츠 생산자, 특히 브랜드와 미디어는 갈등을 부추기고 판매하는 대신, 갈등의 원인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해결의 방향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폭력을 소비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는 갈등을 키우는 콘텐츠가 아니라, 갈등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콘텐츠이다. 이제부터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소통과 화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 특히 브랜드와 마케팅 전문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생양’이 아니라 ‘치유의 메커니즘’을 만드는 기술이다. 갈등을 부풀리고 판매하는 기술이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콘텐츠의 영역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는 6월 3일에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 사회는 단순히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를 넘어, 이 갈라지고 찢겨진 사회를 치유하고 통합할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희생양을 만들어 분노와 증오를 자극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을 이끌 수 있는 메커니즘을 작동할 지도자가 선택되어야 한다.

폭력의 시대를 넘어 치유와 통합의 시대를 만드는 콘텐츠,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우리 시대 콘텐츠 기획자와 유권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책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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