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도와준 것이었다.
다른 팀원이 바쁘다기에 자료를 정리해줬다.
기획서 초안을 다시 다듬어줬고,
업무가 몰린 날엔 회의 정리도 대신 했다.
그 다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도와준 일이 점점 고정된다.
도와달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당신 일이 되어 있다.
도움을 자주 주는 사람은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일의 ‘기본 담당자’가 되어 있다.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자리일수록
그런 일이 반복된다.
조직은 편리한 쪽으로 흐른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일을 쉽게 시킬 수 있는 사람이 더 자주 호출된다.
그리고 만만한 사람은
항상 그 호출의 대상이 된다.
혼자 야근을 자주 하는 사람,
항상 대신 정리하는 사람,
조율과 설득을 늘 떠안는 사람.
이들은 조용히 지치고,
결국 팀 안에서 소모된다.
관계에서 주도권은
무례하게 거절하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다.
선 긋는 법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이건 제 일이 아니고
이번만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명확히 선을 말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는
자꾸 흐려지고, 무게는 늘어난다.
그리고 그 무게는
말을 아끼는 당신에게만 실린다.
회사에서 오래 남고 싶다면
업무에 선이 필요하다.
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호의와 책임은 다르다.
한쪽이 반복되면
그건 일방이 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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