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불 밝힌 도시의 축도(縮圖)우리의 밤은 편의점에서 얼마나 깊어지는가

칠흑 같은 도시의 밤, 대부분의 불빛이 잠든 시간에도 홀로 섬처럼 깨어있는 공간이 있다. 편의점이다. 그 형광등 불빛은 지친 귀갓길의 이정표가 되고, 허기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식탁이 되며, 외로운 이에게는 말 없는 위안이 된다. 우리는 그곳을 단순히 물건을 사는 소매점(retail store)이라 부르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오히려 편의점은 이 시대 도시인의 삶을 가장 정밀하게 담아낸 축도(縮圖)이자, 우리의 가장 내밀한 욕망과 고독이 전시되는 무대가 아닐까.

편의점의 진열대는 현대 사회가 숭배하는 ‘효율성’이라는 신을 모신 제단과 같다. 삼각김밥, 컵라면, 도시락, 낱개 포장된 과일. 이 모든 것은 한 끼의 식사를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설계된 상품들이다. 우리는 ‘시간 빈곤’에 시달리며, 함께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의 시간을 반납하고 그 대가로 몇 분의 휴식이나 몇 분의 추가 노동 시간을 얻는다. 이곳에서 식사는 더 이상 즐거움이나 관계의 행위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과업(task)에 가깝다.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행위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분절하고 가속화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의식(ritual)이다.

만약 편의점이 제단이라면, 그곳에 전시된 유물들은 단연 ‘고독’일 것이다. 1인용 즉석식품과 캔맥주 네댓 개, 소분된 반찬들은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도시인의 초상이다. 이곳에서 관계는 지극히 얕고 기능적이다.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바코드를 찍고, 손님은 카드를 내밀거나 스마트폰을 흔든다. 그 짧은 순간에 오가는 것은 최소한의 정보일 뿐, 인간적인 교감은 거세된다. 오히려 아르바이트생에게 요구되는 ‘감정노동’은 이 공간의 비인격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누구와도 깊이 관계 맺지 못하는 시대, 편의점은 고독을 위한 완벽한 인프라를 제공하지만 결코 그 고독을 해결해주지는 않는, 가장 현대적인 역설의 공간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편의점은 우리의 아주 사소하고도 절박한 욕망을 파는 성소(聖所)이기도 하다. 로또 한 장에 실어 보내는 일확천금의 꿈, 숙취해소제에 담긴 어젯밤의 고단한 위로, 유명 캐릭터와 협업한 한정판 상품을 손에 쥐며 느끼는 소속감. 편의점은 생필품을 넘어 우리의 결핍과 희망, 그리고 그 좌절에 대한 즉각적인 처방전을 판매한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증여론』에서 밝혔듯, 선물 교환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편의점에서의 소비는 어쩌면 우리 자신과 맺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 맺기일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구매할 능력이 있으며, 이 밤을 견뎌낼 수 있다’는 자기 위안의 서사 말이다.

한밤중 편의점의 불빛 아래, 우리는 무엇을 사기 위해 그곳에 서 있는가? 단지 삼각김밥 하나, 맥주 한 캔일까? 아니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잃어버린 시간,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느끼는 허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조금 나아지리라는 찰나의 희망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 24시간 꺼지지 않는 그 불빛은 도시의 밤을 밝히는 등대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깊은 외로움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는지를 비추는 서늘한 탐조등이기도 하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은 현대 도시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진열대에 놓인 즉석식품들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회의 단면을, 1인용 상품들은 파편화된 개인의 고독을 드러낸다. 최소한의 상호작용으로 유지되는 이곳은 고독을 위한 완벽한 인프라를 제공하지만,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나아가 로또, 숙취해소제 등은 우리의 사소한 욕망과 희망, 그리고 좌절에 대한 즉각적인 처방전 역할을 한다. 결국 편의점은 단순한 소매점을 넘어, 우리 시대의 욕망과 고독, 그리고 역설을 가장 선명하게 전시하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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