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줘야 하나봅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줘야 하나봅니다.

옷을 훌렁훌렁 벗고
이 방 저 방 유유자적 거닐던 민주가
이젠 제 방문을 꼭 잠그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 후 팬티만 걸치고 나와도
거침없이 달려와 안기던 민주가
이젠 일찌감치 제 방으로 들어가거나
시선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데나 아무때나 철썩 달라붙어
아빠 껌딱지라는 별명을 가졌던 민주가
이제는 친구들과 노느라
전화도 안 받고,
헤어지면 아쉬워라 수십 번도 넘게
지지뽀뽀를 하던 아이가
이제는 기분이 좋아야
한 번씩 입을 맞추고는
부리나케 입술을 닦아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언제 오냐고
빨리 오라고 하던 녀석이
이제는 오든지 가든지
서운해 하지도 않고요.

 

이제…
아빠만 최고라던 녀석에게
문고리 꼭 잠그고
울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할 테고
유치원에서 쓴 편지라며
보여주던 자리에
자기만의 비밀 일기가 생길 테지요.

 

어른이 되어가며
이유 없이 슬픈 날들도 지날 테고,
가슴 절절한 사연들도 생기겠지요.

 

제 엄마처럼
못난 남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포기할 것 포기하고
정때문에 자식 때문에
그렇게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민주에게
아빠 말고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줘야 하나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우울하고,
어른이 되었음이 서글퍼 질 때마다
달려 올수 있는…

….

“민주야~” 하면 V자를 그리며 아빠의 사진기를 세상에서 제일 반기던 녀석이 이제는 여지없이 고개를 돌립니다.
몰래 한 컷, 강제로 한 컷, 찍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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