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 각

아들은 발걸음을 떼고 말이 터지면서부터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들고 나가는 것을 보면 “엄마 내가 들게”라며 거들기 시작한 것. 그리고는 “아빠 나 알통 보여! 시금치를 먹어서 그래”라며 손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도가 지나칠 때가 있다. 밥상을 들고 거실로 갈 때면 여지없이 기다리라며 달려와 밥상 드는 것을 거든다. 말이 밥상을 함께 거드는 것이지 거의 매달리는 수준이다. 오히려 아이 때문에 밥상을 엎을까 위태위태하며 발을 떼기도 어렵다. 밥상이 거실에 도착하면 아들은 팔을 들어 보이며 “나 힘 세지”라며 자기 혼자 모든 것을 한 것인 양 흡족해 한다.

때로 40이 된 어른도 그 내용은 다르지만 네 살 배기 어린아이와 같은 착각을 하며 산다. 이런 유아적 착각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된다는 말이다.
인터넷 광고회사는 광고창을 계속 뜨게 만들면 언젠가는 접속해주는 줄 안다. 연애 안 해 본 남자는 상대방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 수 있을 줄 안다. 실연한 사람들은 자기 케이스가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줄 안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공부를 못하는 줄 안다. 고등학생들은 앞사람 등 뒤에 누워서 선생님 안 보이면 선생님도 자기가 안 보이는 줄 안다. 재수생들은 이번 수능은 잘 볼 줄 알며, 대학생들은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더 좋은 데 갈 수 있었는 줄 착각한다.

성경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때로 신앙인들도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골수 기독교인들에게는 자신의 참된 상태가 숨겨진 듯하다. 언젠가는 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징조들이 보이고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자신의 신앙이 준비될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증거인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이 그들 앞에 행하는 양, 태연하고 만족스럽게 쉰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공언하나 행위로는 부인한다. 우리들은 자신을 하나님이 택한 특별한 백성이라고 생각하나, 어떠한 죄인이라도 구원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위를 받아 주시리라고 믿는 착각보다 더 큰 기만은 없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과, 그 안에 담겨진 경건의 정신과 능력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가난하고 비참하며 눈 멀고 벌거벗었으며 모든 것을 필요로 하나 스스로 부요하며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착각: 자신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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