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 축복인가 착각인가

인간은 오랫동안 자유의지를 당연한 권리이자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으로 간주하며 살아왔다. 우리 일상의 모든 결정들이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으며, 이를 바탕으로 도덕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인가? 우리가 믿는 그 자유가 혹시 거대한 환상은 아닐까? 기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자유의지는 과학적 연구와 철학적 성찰의 빛 아래에 서면 그 의미가 흐릿해지고, 때로는 오히려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유의지를 둘러싼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그 한계와 모순,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본질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인간이 정말로 자유롭다면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신학적 딜레마가 떠오른다. 성경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신의 전지전능함과 예정된 섭리를 강조한다. 신명기 30장 19절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 앞에 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을 놓고 선택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에베소서 1장 4-5절에서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택하여 예정했다고 선언한다. 여기에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 모순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순은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칼뱅의 예정론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보았으며, 아르미니우스는 인간의 선택권과 그에 따른 책임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신학적 갈등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끝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이 모순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마치 선택지 두 개만 놓고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뷔페 식당과 같다. 메뉴는 자유지만, 메뉴판은 누군가 이미 작성했다.” 이처럼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이 이미 모든 것을 조율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은 여전히 자유의지를 논의할 때의 난제다.

그렇다면 과학의 시선에서 바라본 자유의지는 어떠할까? 현대 신경과학의 발견은 더욱 당혹스럽다. 벤자민 리벳의 실험은 인간이 행동을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이미 뇌가 결정해놓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인간의 뇌는 의식적으로 행동하기 약 0.5초 전에 이미 결정을 내린다. 이는 마치 우리가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의 뇌가 먼저 결정하고 의식은 그 결정을 받아들일 뿐이라는 섬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속 연구는 인간의 뇌가 무려 7초 전부터 행동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Soon et al., 2008) 이런 연구를 접하면 자유의지란 인간의 가장 정교한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법적, 윤리적 책임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만약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하다면, 범죄자에게 행위의 책임을 묻고 벌을 내리는 것은 정당한가? 가령,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환경의 희생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때 그 사람의 범죄가 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이러한 책임의 경계를 깊이 고민한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이유로 온전히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이에 대한 논쟁은 인간의 선택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긴장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더 나아가 우리가 자유의지로 내렸다고 생각하는 선택들은 실제로는 사회적 환경, 유전자, 문화적 배경 등 수많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인간의 선택이 수많은 인지편향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광고, 여론, 사회적 압력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끌려다닌다. 심지어 우리의 종교적 선택조차도 우리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태어난 국가, 부모의 종교, 교육 환경과 같은 조건들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신앙적 선택 또한 자유의지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

자유의지 개념에 대한 또 다른 딜레마는 도덕적 책임과의 관계에서 더 심각해진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적 불평등, 유전적 특성, 뇌 구조와 같은 요소들이 실제 선택의 배경에 작용했다면, 과연 그 책임은 온전히 개인이 져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자유의지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정당화하는 핵심 근거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그 한계를 우리 앞에 명확히 드러낸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도 우리 삶을 허무주의와 책임 부재의 늪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우리가 완전한 자유의지를 갖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하고 책임지려는 태도 자체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든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가 말한 것처럼, 자유의지가 있든 없든 인간은 자신을 자율적 존재로 여기고 도덕적 책임을 지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자유의지는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축복인 동시에 가장 깊은 모순이기도 하다. 그 축복을 즐길지, 아니면 착각 속에서 방황할지의 선택조차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인지 모른다. 이런 모순과 딜레마 속에서도 여전히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참고 자료:

  1. Benjamin Libet, “Do We Have Free Will?”, 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 1999.
  2. Soon et al., “Unconscious determinants of free decisions in the human brain”, Nature Neuroscience, 2008.
  3.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와이즈베리, 2010.
  4.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김영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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