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談] 폭싹 속았수다 -‘그때 말하지 못한 한마디’어떤 드라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기억이다

[쓰담쓰談] 폭싹 속았수다 -‘그때 말하지 못한 한마디’<span style='font-size:22px;display: block; margin-top: 14px;'>어떤 드라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기억이다</span>

제목이 이상했다.
‘폭싹 속았수다’라니.
제주 방언으로는
‘수고하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많이 고생하셨네요’란 뜻이란다.

그리고 몇 회를 지켜본 뒤, 나는 스스로 말했다.
‘그래, 이건 나와 내가족의 인생을 대신 말해주는 드라마구나.’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드라마는 이야기보다 마음이 먼저 와닿았다.
주인공들의 운명도, 사랑도, 가족도
마치 내가 지나온 골목과,
내가 버거워했던 청춘과,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의 얼굴을 닮았기
때문이다.


‘오애순’이라는 이름은,
꼭 어릴 적 동네에 살던 조금은 센 언니,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했던 누나의 느낌
이 났다.
문학소녀라는 말 자체가 촌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래서 더 정겹고 현실적이었다.
세상은 거칠고, 사람들은 모질지만
‘글 쓰는 마음’ 하나로 버텨내던 소녀.

그리고 ‘양관식’.
이름부터 튼튼하고 묵직하다.
‘무쇠’처럼 성실하고,
‘우직’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자기 감정 한 번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삶을 견뎌낸 그 남자.
지금 이 땅에 관식이 같은 이름은 많지 않아도,
그런 남자들은 여전히 곳곳에 살아 있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을 견디는 시간들을 더 오래 보여준다는 점
이다.
꽃처럼 피었다가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비바람 속에서도 자라나는 사랑,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며 늙어가는 이야기.

그래서 더 진짜다. 그래서 더 아프다.


그리고 배경은 제주다.
제주는 단지 아름다운 섬이 아니다.
이 드라마에선 풍경이 배경이 아니라 기억이 된다.
돌담길, 귤밭, 그늘진 오름 아래서
사람들이 부대끼고 사랑하고, 싸우고 껴안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안에서 자신의 어릴 적 집을, 부모님 얼굴을,
혹은 첫사랑의 뒷모습을 찾게 된다.


이야기는 1950년대에서 시작하지만,
사실상 그 시절을 살아본 적 없는 우리조차도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왜일까.
아마 그건,
시간이 달라도 아픔과 기쁨은 결국 같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기다리는 감정,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그때 말하지 못한 한마디’를 여전히 품고 살아가는 어른들의 표정.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라기보단, 기억을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내 것이기도 하고,
내가 미처 보듬지 못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제와 자매의,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의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왜 그 드라마가 인생 드라마냐”고.
나는 말할 것이다.
“그건 내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놓친 어떤 마음을 그 이야기가 대신 품어줬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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