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비자인가, 상품인가?“우리는 무엇을 사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팔고 있는가”

한때 소비는 ‘사고 싶다’는 욕망이었지만
지금의 소비는 ‘살 수밖에 없는’ 압박이다.
살지 않으면 뒤처질까 봐,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까 봐,
오늘도 우리는 결제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사고 있는 것은 물건일까, 아니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 시간, 정체성조차
상품처럼 포장하고 진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2023년 미국 유타 대학교의 한 연구는
Z세대의 72%가 “브랜드가 내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느낀다고 응답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브랜드는 물건이 아니라, 자아다.
아이러니한 건,
그 브랜드를 선택한 것이 자유의 표현이었을지 몰라도
그 선택은 이미 알고리즘이 추천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우리의 기호는 분석되고,
우리의 감정은 추천되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되었다.

심지어 우리는 나를 파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이력서, 프로필, SNS, 링크드인, 심지어 소개팅 앱까지.
‘나’를 어떻게 마케팅하고,
‘나’를 어떻게 브랜딩할지 고민하는 삶.

마치 우리가 하나의 ‘제품’이 된 듯
우리 스스로를 팔고, 평가받고, 포장하는 시대.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오늘날 사람들은 ‘욕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하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발적으로 원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원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위에 서 있다.

욕망조차 내 것이 아닌 시대,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은
무엇을 더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거절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지금
‘감정의 소비화’에 가장 익숙한 문화 중 하나다.
기쁨, 분노, 위로, 심지어 공감마저
팔리고, 유통되고, 전시된다.
“이 영상, 보면서 우세요.”
“이 글, 감동받으셨다면 공유해주세요.”
감정조차 클릭 수로 번역되는 세상.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가?
기억인가, 감성인가, 아니면 그냥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명서인가?

진짜 문제는 소비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소비가
자기 기만의 장치가 되었을 때,
비어 있는 자아를 가리는 커튼이 되었을 때,
우리는 결국
‘사는 것 같지만 사는 게 없는 삶’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정말 사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한 장의 종이일지도 모른다.
그 종이엔 이렇게 써 있어야 한다.11

“나는 나를 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를 팔지 않겠습니다.”

그 선언 하나면 충분하다.
당신은 더 이상
누구의 타임라인에서도,
알고리즘 속에서도
값으로 매겨질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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