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死後) 08]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이 당신의 영혼을 만든다말은 선언이며 구조이며, 죽음 이후를 설계하는 건축 언어다

[사후(死後) 08]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이 당신의 영혼을 만든다<span style='font-size:18px;display: block;'>말은 선언이며 구조이며, 죽음 이후를 설계하는 건축 언어다

인간은 말하는 존재다.
하지만 단지 소리를 내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말로 세계를 짓고,
말로 자신을 규정하며,
말로 영혼의 무늬를 새긴다.

말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형식이며, 영혼의 외피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요한복음의 이 문장은
인간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지만,
더 넓게 보면 언어가 존재를 창조하는 질서임을 선언하는
형이상학적 문장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말과 이데아를 연결했고,
스토아학파는 로고스를
우주의 이성적 구조라 보았다.
중세 신학은 그 로고스를 하나님이라 불렀고,
현대 철학자들은
그 로고스를 존재의 본질로 다시 불러냈다.

루터는 믿음은 고백이라고 했고,
칼 바르트는 “신앙은 언어적 사건”이라 말했다.
말은 단지 생각의 발화가 아니라
존재를 소환하는 선언의 힘이다.

그리고 말은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라
죽은 이후에도 존재의 윤곽을 남긴다.

내가 평생에 걸쳐 입에 담아온 단어들,
내가 자주 사용한 말투,
내가 반복한 선언,
내가 신에게, 타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건넨 언어의 집합은
죽음 이후의 나를 상상하는 재료가 된다.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을 공간으로 상상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가 쌓아온 말들이 응축된 하나의 구조물일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퍼부은 저주,
내가 스스로를 학대하듯 뱉은 절망의 말,
내가 타인과 맺은 따뜻한 언약,
그 모든 언어가 죽음 이후 펼쳐질 세계의 벽과 지붕과 바닥을 이룰지도 모른다.

불교의 업(業)도 결국 말과 행동, 마음의 축적이며,
유식학은 모든 것이 마음으로 지어진다고 말하지만
그 마음은 말로써 세계를 구체화한다.
말은 마음의 형상이자,
현실로 나아가는 영혼의 지문이다.

말은 방향이다.
내가 지금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존재는 어디로든 흐른다.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가,
누구를 지지하는가,
내가 스스로에게 뭐라고 말하는가,
이 모든 언어의 선택이
나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 채 말하고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이 언어적 구조가 응결된 하나의 운명적 설계도일 수 있다.
내 말의 무게, 진실성, 반복성, 사랑과 분노의 진동수가
죽음 이후에도 나라는 존재의 톤과 질감을 결정짓는다.

천국은 어쩌면 평생 ‘감사합니다’를 외친 사람이
마침내 머무는 감정의 진동일 것이고,
지옥은 ‘왜 나만’이라는 말로 자기를 둘러친 사람이
빠져드는 자기 확장의 굴레일지도 모른다.

말은 마침내 존재가 되고,
존재는 죽음 이후에도 언어적 기억으로 남는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영혼을 만든다.

그리고 그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그 말이 머물던 공간과 질서 속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
나는 어떤 단어로 나를 짓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언어를 따라 살고 있으며,
나는 누구의 존재가 될 말을 품고 있는가?

죽음 이후를 짓는 자는
지금,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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