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AI가 다 할 겁니다.”
“이제는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창의적인 일만 하면 됩니다.”
“노동에서 해방되는 시대가 곧 옵니다.”
이처럼 미래를 말하는 이들의 언어에는 언제나
희망, 해방,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앞세워진다.
그러나 그 말들의 밑바닥에는 묘한 회피의 감각이 있다.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길 바라고 있고,
책임은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고 있으며,
윤리는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면제되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를 말하는 이들은
무엇이 자동화되고,
어떤 구조가 최적화되며,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를 말한다.
그러나 그 기술이 노동자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가,
그 변화가 인간의 존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침묵은 기술적 무지가 아니라,
윤리적 무관심의 구조화다.
AI와 자동화는 ‘도구’가 아니라 ‘체계’다.
단순한 툴이 아니라,
노동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소득의 분배 방식을 흔들고,
사회적 역할의 정의를 재편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AI를 논하는 이들의 담론에서는
“노동이란 무엇인가”,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윤리는 시스템에 포함되는가” 같은 질문이 빠져 있다.
대신,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자동으로 돌아간다”
“수익은 당신의 손을 거치지 않는다”
이러한 언어는 매혹적이지만,
결국 인간의 개입을 제거하면서,
인간의 책임도 함께 사라지는 구조를 정당화한다.
AI가 고객을 응대한다.
AI가 상품을 추천한다.
AI가 콘텐츠를 만든다.
그렇다면, 그 콘텐츠로 인한 사회적 반향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 편향된 추천이 만들어낸 차별은 누구의 몫인가?
그 알고리즘이 생산한 실업은 누가 감당하는가?
미래를 말하는 자들이
정작 가장 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책임의 주체성.
그들은 변화의 속도를 말하지만,
그 변화에 따른 윤리적 합의와 사회적 감수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 결과,
기술은 진보하지만,
사회는 윤리적으로 퇴보할 수 있다.
기술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지 않다.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따라
그 기술은 무기가 되기도 하고, 구조가 되기도 한다.
AI가 노동을 대신하게 될 미래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진보여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기술보다 먼저 노동의 윤리,
자동화보다 먼저 책임의 주체,
혁신보다 먼저 사회의 상호성을 말해야 한다.
AI를 말하는 자는 기술을 팔고 있다.
그러나 기술을 말하면서 인간을 침묵시키는 자는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
미래를 말하는 자는
먼저 책임져야 할 현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윤리 없는 예측은
결국 윤리 없는 사회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