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물학 책이지만,
그 한 권이 만들어낸 문명적 파장은
마치 자본주의의 교과서처럼 기능해왔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모든 생명은 자기 복제자의 생존을 위한 전략일 뿐이다.”
이러한 명제는 너무나도 설득력이 있어서,
진화론을 넘어 시장 논리와 자본주의 체계의 정당성마저 설명해버리는 도구가 되었다.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신화.
이기심이야말로 생존의 전략이라는 확신.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새
‘이타성은 이기심의 고등전략’이라는 명언을 인용하며
‘착한 자본주의’라는 기묘한 문장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의 이기심과
인간의 사회경제적 이기심은 같은 결일까?
도킨스는 말한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그 유전자가 자기 자신을 복제하고 생존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는 뜻이지,
인간이 윤리적으로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명령은 아니다.”
즉, 그는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지,
‘그래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자본주의 언어에선 빠르게 오용되었다.
“경쟁은 자연의 법칙이고, 시장은 그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기업은 인간의 감정보다 이윤을 우선하고,
소비자는 관계보다 가격에 반응하며,
삶은 점점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 요약된다.
도킨스는 자연을 읽었고,
우리는 그 자연을 따라
사회마저 복제해버린 셈이다.
자본주의는 이기심을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기심을 길들이는 방식에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기심이 ‘자유’의 다른 이름으로 포장되고,
불평등이 ‘능력’이라는 말로 덮이며,
경쟁이 ‘진보’로 불리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묻는다.
경쟁이 이기심을 낳았는가,
이기심이 경쟁을 낳았는가?
『이기적 유전자』의 메시지를 기술로서 읽었다면,
그 이후의 자본주의는 그 메시지를 이념으로 소비해왔다.
그리고 그 이념은,
협력의 질서를 약화시키고,
관계의 윤리를 마비시키며,
브랜드마저 ‘감정이 아니라 성과’로 설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화론의 세계에는 또 다른 개념이 있다.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
일방적 착함이 아니라,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지속 가능한 신뢰의 시스템.
브랜드도, 조직도, 인간 관계도
결국 이 ‘호혜적 구조’ 안에서만 살아남는다.
한 번 사는 고객이 아니라,
반복해서 찾는 고객.
한 번 반짝하는 브랜딩이 아니라,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는 정체성.
자본주의의 본질은 이기심이 아니다.
그 이기심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도킨스의 유전자를 빌려
브랜드를 말하고, 사회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경쟁”이라는 본성에만 기대기보다
“호혜”라는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진화는 이기심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공존과 협력, 그리고
의미 있는 반복이 만들어낸 ‘패턴’이
생명을 생명답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철학은
브랜드와 비즈니스, 콘텐츠와 공동체에까지
지속 가능한 설계도로서 이식될 수 있어야 한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mail: brian@hyuncheo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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