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한때 사람들의 손과 어깨로 지탱되던 세상이,
이제는 차가운 강철 팔과 무정한 알고리즘으로 채워지고 있다.
태초에 인간은 죄를 범했고, 신은 엄중한 선고를 내렸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세기 3장 17~19절)
노동.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행위 중 하나였다.
노동과 땀은 고귀하고 신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종교적으로도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자 동시에 존재의 의미였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땀 흘리며 대지를 일구었고, 그 수고 속에서 문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자신을 대신할 노동자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와 땀이 아니라, 철과 전류로 움직이는 존재, 바로 휴머노이드다.
노동에서 해방될 것을 꿈꾸던 인간은 마침내 그 꿈의 문턱에 섰지만, 이 순간 우리는 다시금 깊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인간이 노동을 기계에게 넘겨줄 때,
과연 인간은 신의 형벌에서 자유로워지는가,
아니면 더 깊은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는가?
노동 없는 인간은 무엇인가?
1. 노동, 인간 존재의 뿌리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노동을 ‘인간 존재의 지속을 위한 기본 행위’로 규정했다.
-
노동은 인간의 몸을 유지시키고, 공동체를 이루며, 문명을 쌓았다.
-
노동은 인간에게 정체성을 부여했다. 농부, 목수, 시인, 의사, 선생님.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곧,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2. 휴머노이드, 노동 시장에 발을 들이다
처음에는 단순 반복 노동이었다.
공장의 조립라인, 창고의 분류작업, 위험한 건설현장.
이제는?
-
호텔 리셉셔니스트: 일본의 ‘헨나 호텔’에서는 체크인을 받는 로봇 공룡이 고객을 맞는다.
-
간병인: 인공지능 로봇이 노인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대소변을 받아낸다.
-
교사: AI 튜터가 학생들의 수준별 학습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
변호사: 계약서 초안, 판례 검색, 소송 전략까지 AI가 분석하고 제안한다.
-
의사: 피부암을 진단하는 AI가 숙련된 전문의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3.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가
-
사라질 노동: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작업. 계산, 입력, 자료 정리, 단순 서비스, 심지어 창의적 편집까지.
-
남을 노동: 창의성, 공감, 윤리적 판단, 복잡한 인간관계 조정, 예술과 철학.
그러나 이 ‘창의성’마저도, GPT, 미드저니(Midjourney), 오픈AI의 달리(DALL·E)가 파고들고 있다.
4. 인간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모든 인간이 창조적 천재가 될 수 없다면, 인류는 스스로 만든 기계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굶주리게 될 것이다.” –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노동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자기 실현’과 ‘사회적 연결’의 장으로. -
기본소득제 논의는 이 문맥에서 등장했다.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고, 인간다움을 지속시키는 방법. -
사회적 존엄성은 단순히 일을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5. 인간과 휴머노이드, 공존할 수 있을까
-
인간은 노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
휴머노이드는 그 노동을 분담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는 ‘의미’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오직 명령과 효율을 위해 일할 뿐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과 노동을 통해 만들어내는 “의미의 세계” —
이것이야말로 기계가 영원히 대체할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일 것이다.
일의 종말, 인간의 시작
노동의 종말은 인간의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이 해방될 때, 인간은 비로소 “삶 그 자체”를 재정의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처럼,
예술과 철학과 공동체를 위해 살아가는 인간.
비로소 “삶이 목적이 되는 시대”를 여는 것.
그것이 휴머노이드 시대에 인간이 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