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늘 ‘정해진 길’이 존재한다.
좋은 학교, 안정된 직장,
사회의 기준에 따라 설계된
평균적인 생애 곡선.
하지만 그 안에선
살고 있다는 감각보다
살고 있는 척하는 피로가 쌓인다.
그래서 어느 순간 묻는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 안에서 살아진 채 흘러가고 있는가?”
삶을 영위한다는 건,
‘살아지는 것’에서 ‘살아내는 것’으로 옮겨가는 일이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궤도 위를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스스로 궤도를 설계하는 사람.
남이 그은 선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결을 따라 발걸음을 딛는 사람.
이 말은 거창한 자아 찾기나 이상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그저 매일의 선택 속에서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는지 아는 사람,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틀은 외형을 보장하지만,
삶의 실감을 앗아간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 안에는
위험도 없고 혼란도 없다.
그러나 거기엔 열정도, 호기심도, 주체성도 없다.
틀은 안전한 감옥이고,
그 안에 오래 있을수록
사람은 생각보다 설계된 반응만 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틀을 부정하는 건,
반항이 아니라
주체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다.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기준을 따지기보다 감각을 믿는다
지금 이 선택이 내게 어떤 떨림을 주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에 끌리는지를
자기 내면의 언어로 번역할 줄 아는 사람.
그는 비록 불안할지언정,
남의 인생을 복사해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타인의 박수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숨소리를 기준으로 하루를 설계한다.
삶을 영위한다는 건
직업, 주소, 재산보다
자신의 태도와 감정에 책임지는 일이다
그 감정이 위태로워질 때
그는 환경을 바꾸는 대신
자기 내면을 먼저 정리하고,
거기서 새 방향을 길어올린다.
그는 현실에 길들여지기보다
현실을 길들이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누군가 정해놓은 삶은
정답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정답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삶은
설계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살아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스스로 삶을 영위한다는 건
‘틀’이 아니라 ‘결’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이야말로
당신을 유일하게 만든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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