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 물었다.
“위대한 인물은 죄를 지어도 되는가?”
그의 답은, ‘된다’였다.
만약 나폴레옹이 가난한 노파 하나쯤 죽여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건 ‘죄’가 아니라 ‘정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직접 실험에 나선다.
도끼를 들고, 노파를 죽인다.
그러나 죽인 건 노파 한 명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 전체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을 통해
인간의 이성, 도덕, 신념, 그리고 신 앞의 나약함을
이보다 더 치열하게, 더 깊이 있게 다룬 적이 없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사회의 모순을 탓하지만,
그 죄는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의 오만에서 시작된다.
‘나는 특별하다’는 믿음, ‘나는 선택된 자’라는 착각,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 있는 도덕 없는 정의,
그것이 그를 무너뜨린다.
도스토옙스키는 이야기 중반부터
라스콜리니코프를 말없이 무너뜨린다.
경찰이 아니라, 법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양심이 그를 죄의 감옥에 가둔다.
그러나 이 책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소냐’라는 존재 덕분이다.
창녀였으나 경건한 마음을 가진, 조용한 사랑의 화신.
그녀는 죄인을 책망하지 않는다.
그의 죄를 짊어지며, 침묵으로 감싸고,
오직 희생과 인내로 그의 벌을 함께 겪는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지점에서 말없이 선언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위대한 자가 아니라,
용서하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 책이 묻는 핵심 질문
- 인간은 죄를 이성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 정의는 도덕 위에 있는가, 그 아래에 있는가?
- 참회란 무엇이며, 구원은 어떤 방식으로 오는가?
- 우리가 벌받는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죄를 자각했기 때문인가?
독서어록
“위대한 인간은 없다. 죄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죄는 피로 씻기지 않는다. 죄는 고백으로만 견뎌진다.”
“구원이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은 없다. 모든 폭력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다독다讀
『죄와 벌』은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도스토옙스키는 한 청년의 타락을 따라가며,
정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오만을 고발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말없이 묻는다.
“누가 진짜 위대한가? 스스로 신이 되려는 자인가,
아니면 죄인을 안아주는 사람인가?”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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