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논리보다 ‘창업자의 확신’이 빠를 때멈출 이유가 백 가지면, 달릴 이유는 한 가지면 된다

한 번이라도 사업 계획서를 써본 사람은 안다. 숫자는 멈출 이유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준다. 시장 침투율, 원가율, CAC·LTV, 자본 회수 기간… 표 아래에 박힌 소수점은 언제나 “아직은 아니다”를 속삭인다. 거센 경쟁사, 변덕스러운 정책, 자금 조달 난맥, 팀빌딩 실패 가능성—모두 정숙한 회의실에서 내비게이터를 자처한다. 그렇게 ‘안 될 이유’는 금세 백 가지, 아니 천 가지가 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기업이 탄생하는 순간은 엑셀 시트가 아니라 한 문장짜리 직관에서 시작된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혹은 “이 가치를 세상에 없으면 안 된다”라는 불가역적 확신. 숫자는 그 직관을 검증하는 도구이지, 거꾸로 직관을 억누를 알리바이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를 ‘Founder‑Market Fit’이라 부른다. 창업자가 문제와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몸으로 이해하고 있을 때, 외부의 회의적인 시선은 자본 논리를 압도한다. 투자자들은 결국 매출 곡선이 아니라 고집스러운 한 가지 이유에 베팅한다. 국내 스타트업 씬에서도 똑같다. 정부 과제 탈락, 시드 투자 거절, 첫 고객 유치 실패… 그것이 백 번이어도 “그래도 해야 한다”는 하나가 남아 있다면, 다음 라운드는 존재한다.

백 가지 변수를 모두 통제하려는 경영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 확신에 팀을 결집시키고, 고객을 설득하고, 숫자를 맞춰 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시장은 준비됐다”가 아니라 “세상은 바뀌어야만 한다”를 외쳤다. 불확실성은 녹슬지 않는 성장 엔진이다.

자, 질문은 간단하다.
‘멈추지 못하게 하는 그 한 가지가 당신의 비즈니스 안에 있는가?’

있다면, 영업이익률보다 먼저 그 확신을 KPI로 삼아야 한다.
없다면, 숫자를 아무리 더해도 사업계획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도 수많은 보고서가 실패 확률을 산출한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한다. 백 가지 근거로 멈춘 기업보다, 한 가지 확신으로 달린 기업이 시장을 바꾼다. 그러니 과감히 첫 문장을 적어 넣자. “이 문제는, 내 사업이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그 선언이 끝나는 자리에서 이미 절반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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