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힘은 텔링에서 완성된다이야기보다 말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한 신인 작가가 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왔다. 내용은 꽤 괜찮았다. 시대를 아우르는 대서사였고, 등장인물도 개성 넘쳤다. 그런데 읽는 내내 심장이 뛰지 않았다. 편집자는 조용히 말했다.
“이야기는 좋은데, 말하는 방식이 아쉽네요.”
작가는 어리둥절했다. “내용이 중요한 거 아닌가요?”
“요리는 재료가 아니라 손맛입니다.” 편집자의 대답은 그랬다.

우리는 종종 스토리를 절대시한다. 브랜드든, 영화든, 글쓰기든 “좋은 스토리”가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스토리가 있으면 다 된다.” 정말 그럴까? 세상은 이미 수천, 수만 번 반복된 이야기로 가득하다. 로미오와 줄리엣, 춘향과 이몽룡, 해리 포터와 볼드모트. 인물만 바뀌었지, 구조는 비슷하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심장을 두드리고, 어떤 이야기는 건조하게 흘러간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텔링이다. 똑같은 재료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과 설득력을 갖게 된다.

텔링이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유시민은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그릇이 투박하면 아무리 귀한 음식도 맛이 없다. 김훈은 “문장은 살아 있는 생명체”라 했다. 살아 숨 쉬는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텔링이란, 이 그릇과 생명체를 빚는 손길이다.

텔링이 바꾸는 세계

텔링은 단지 말솜씨가 아니다. 세상을 해석하는 시선이고, 낡은 구조를 뒤집는 힘이다. 같은 뉴스를 두 사람이 전한다 해보자. 한 사람은 숫자와 사실만 나열한다. 다른 한 사람은 그 안에 숨은 인간의 표정, 시대의 공기를 읽어낸다. 후자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고전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텔링이란, 바로 이 태도를 담는 그릇이다. 나의 경험, 나의 감정, 나의 시선이 녹아든 말. 그것이 독자를 움직인다.

스토리텔링, 그 너머

요즘 마케팅, 브랜딩, 콘텐츠 산업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진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와 텔링의 합성어지만, 실상은 ‘텔링’이 80%다.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제품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당신이 만약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스토리를 고민하기 전에 텔링을 연습해야 한다.

왜 ‘텔링’인가?

이야기의 핵심은 줄거리가 아니라 전달 방식이다. 같은 이야기도 누가, 어떻게, 어떤 리듬으로 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예컨대 누군가 “나 어제 길에서 유명 연예인을 봤어!” 라고 말하면, 그 사람의 말투와 눈빛, 속도, 멈춤의 간격에 따라 우리는 흥분하거나, 지루해하거나, 혹은 무시해버린다. 메시지의 본질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말하는 형식과 태도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무대에서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예술이 되듯, 이야기를 예술로 만드는 건 스토리가 아니라 텔링이다.

브랜드와 정치, 텔링의 승자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콘텐츠와 메시지를 접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하나다. 텔링이 뛰어난 것.
정치인이 수많은 공약을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단 한마디로 국민을 울린다. “사람이 먼저다.”
이건 정책이 아니라 텔링이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만든 스토리 자체는 사실 단순하다. ‘혁신적인 기계로 세상을 바꾸겠다.’
그러나 그것을 잡스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말하느냐, 디자인과 언어로 어떻게 직조하느냐가 전부였다.

텔링은 콘텐츠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스토리가 정보라면, 텔링은 ‘형상’이다.
우리는 정보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형태 있는 감각을 따라 행동한다.

텔링을 결정짓는 요소들

  • 리듬: 짧고 강한 문장, 긴장과 이완의 반복

  • : 말투는 메시지의 절반을 지배한다

  • 속도: 때로 멈춤은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 비유와 상징: 사람은 직접 말하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에 감동받는다

  • 청자 중심: 잘 말한다는 건 ‘듣는 사람의 귀’로 말하는 것이다

스토리를 죽이는 텔링, 스토리를 살리는 텔링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도 실패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기 말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멋진 단어, 멋진 문장을 차용하면 더 좋아 보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 순간 말은 죽는다.
오히려 더 불완전하고 날 것의 언어가 진심을 드러낸다. 진심이란 완성된 게 아니라 ‘움직이는 말’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말투가 우리를 만든다.

어떤 메시지도 텔링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토리를 갖고 있다고 안심하지 마라.
그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말해질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건 살아 있는 메시지가 아니다.

그래서 결국 말이 힘이다.
말하는 방식이 곧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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