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칼로 무 자르듯 해결되는 일이 드물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결단’부터 떠올린다.
“그만해.”
“차단해.”
“끊어버려.”
이 단어들에는 어떤 카타르시스가 있다. 단호한 말 한마디로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날려버리는 듯한 착각. 하지만 잘라낸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풀지 못한 매듭은 다른 이름으로, 다른 얼굴로 다시 돌아온다.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어진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고, 마지막 말을 남겨놓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쏟아낸다.
현상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복잡한 질문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만성적 조급증이 아닐까.
문제는 ‘절단’의 대상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가 불편하면 차단하고, 의견 충돌이 생기면 대화를 닫는다.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결론만 던지고 자리를 떠난다.
그러면서 말한다. “내가 더 끌면 이건 끝장난다.”
아니다. 그렇게 끝장난 건,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이다.
현상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며, 마지막 말까지 내뱉는 태도.
이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절단’이다.
문제는 칼로 썰듯 끊는 것이 아니라, 실타래처럼 풀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과 인내, 무엇보다 여백의 언어가 필요하다.
말끝을 남기는 사람은 관계를 남긴다
말에는 여운이 있어야 한다.
말끝을 탁 자르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길’도 함께 자른다.
“나는 할 말 다 했어.”
그 말 뒤엔 언제나 침묵과 냉기만 남는다.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만 말할게.”라고 한 사람은, 다음 대화의 문을 남겨둔다.
모든 문제를 ‘판결’처럼 다뤄야 할 이유는 없다.
모든 감정을 ‘처분’하듯 쏟아낼 필요도 없다.
감정을 감추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살피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끝까지 말하는 사람보다, 한마디 덜 말할 줄 아는 사람이 관계를 살린다.
절단은 빠르지만, 해결은 깊다
단호함은 멋있다. 하지만 단호함이 꼭 현명함은 아니다.
절단은 빠르다. 그러나 해결은 느리고 고된다.
당장의 감정은 단칼에 끝내고 싶지만, 진짜 관계와 문제는 조금 느리게 가야 풀린다.
당신은 지금, 문제를 풀고 있는가? 아니면 자르고 있는가?
결단(決斷)은 용기와 통찰의 산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결단과 절단을 혼동한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잘라내는 것’으로 오인한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 사람은 원래 저래.”
단정적 언어, 닫힌 결론, 남겨진 여백 없는 해석.
모든 현상을 흑백으로 나누고, 복잡한 맥락을 무시한 채 단순화한다.
이분법적 사고, 과도한 일반화, 마지막 한마디까지 남김없이 쏟아내는 언어.
이런 태도는 대화의 문을 닫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잘라낸다.
“내가 옳다”는 확신 뒤에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공간이 없다.
이런 태도는 문제의 뿌리를 건드리지 못한 채, 오히려 더 큰 오해와 갈등을 남긴다.
문제는 ‘풀어야’ 한다
문제는 칼로 자르듯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맥락, 감정, 이해관계를 하나씩 풀어야 한다.
“남겨진 말”이 있을 때, 우리는 더 깊은 대화와 성찰로 나아갈 수 있다.
동양의 지혜는 ‘유(柔)’의 미덕을 강조한다.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천천히 푸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결단이다.
결론 없는 결단, 그다음은?
결단을 내리고 나서 더 후회한 적이 있는가?
말을 다 해버리고 나서, 오히려 더 찜찜했던 순간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해결의 기술’이 아니라 머무는 기술이다.
문제를 껴안고, 불편함을 통과하고, 끝장을 말하는 대신 여지를 남기는 용기.
진짜 강한 사람은 결론이 아니라 대화의 틈을 남겨둔다.
오늘 당신은, 어떤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결단의 미학을 택할 것인가, 절단의 폭력성을 반복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푸는 것이다.
자르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단호한 결단과 말끝 없는 폭발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다. 말끝을 남기고, 여백을 두는 태도는 관계의 숨통을 열고, 실타래처럼 얽힌 상황을 풀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절단은 빠르지만 얕고, 해결은 느리지만 깊다. 우리는 끊어내는 기술보다 머무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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