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병에 3만 7천원. 스무디 한 잔에 2만 4천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가격표를 달고서도 손님들이 줄을 서는 마트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에레혼(Erewhon)이다. 당신은 이것을 단순한 바가지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우리 시대 가장 정교한 브랜딩 전략을 본다. 에레혼의 성공은 역설적이다. 경제적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에 가장 비싼 마트가 오히려 더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논리를 넘어선다.
도대체 무엇이 이 ‘존재할 수 없는 마트’를, LA의 성지로 만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에레혼은 물을 파는 게 아니라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판다. 물과 과일이 아니다.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구매하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말하는 ‘브랜드 포지셔닝’의 완벽한 사례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Nowhere(어디에도 없다)’를 거꾸로 한 ‘에레혼’은 유토피아를 뜻한다. 오웰의 『1984』와 반대편에 있는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 『Erewhon』(Nowhere의 철자 반전)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 브랜드는 이미 ‘현실의 뒤틀림’을 의도하고 있다. 이 마트에서 쇼핑한다는 것은, 단지 식재료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몸에 투자하고 있다’는, 신체와 정신 모두를 재현하는 퍼포먼스다. 이것이 에레혼이 파는 진짜 상품이다 — 라이프스타일의 자아화. 처음부터 “우리는 특별해”라고 선언한 셈이다.

MZ세대가 에레혼에서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찍는 행위를 단순한 허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들에게 소비는 존재 증명의 방식이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지적했듯, 현대인의 불안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에레혼은 이 불안을 달래주는 일종의 세속 종교다. 매장 곳곳에 배치된 쇼핑 컨설턴트들은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구도자들이다. 그들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전도한다. 고의적으로 불편하게 설계된 매장 동선은 효율성을 거부하고 성찰의 시간을 강요한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ritual)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나, 건강을 추구하는 나, 품격 있는 소비를 하는 나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례적 행위다.
에레혼을 설명하면서 ‘가격’을 문제 삼는 것은, 고액의 헌금과 십일조를 내는 신실한 신자들을 조롱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주스는 음료가 아니라 주술이다. “$18짜리 스무디”는 당신에게 활력, 생기, 의식 수준, 비건 영성까지 부여한다. 그건 그냥 음료가 아니라, 존재의 재정의다. 브랜딩은 그래서 ‘품질의 과잉’이 아니라, 의미의 포화로 이루어진다.
에레혼의 제품은 마치 미술 작품 같다. 성분은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희귀하거나, 미세하거나, 아무튼 ‘나만 아는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를 구분 짓는다. 정반합의 리테일: 정(정통), 반(과잉), 합(경험) -에레혼은 ‘마트’라는 정통적인 플랫폼 위에, ‘가격의 반란’이라는 비정상성을 얹고, ‘경험의 총합’으로 완성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경험을 소비하고, 자기 서사를 구축한다. 그들은 말한다. “나 오늘 에레혼 다녀왔어.” 그건 “난 지금 이 삶에 투자 중이야.”라는 우회 표현이다.
에레혼은 그 어떤 마트보다 마트답지 않지만, 동시에 가장 ‘마트적’이다. 왜냐면, 그곳에는 사람, 물건, 선택, 가치, 이야기, 그리고 연출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마트는 무언가를 파는 공간이지만, 에레혼은 그 무엇보다도 정체성과 욕망의 경계를 판다. 물건을 파는 듯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삶을 사는 방식’ 자체를 큐레이션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브랜딩의 종합예술이다.
희소성 마케팅: 없어 보이게 만드는 기술
에레혼의 첫 번째 무기는 ‘희소성’이다. 전 세계에 딱 10개 매장만 있고, LA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성의 법칙’을 정확히 활용한 거다. 쉽게 살 수 없으니까 더 갖고 싶어진다.
가격도 마찬가지다. 비싼 가격 자체가 상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신호가 된다. 경제학자 베블런이 100년 전에 발견한 ‘과시적 소비’ 이론이 2025년에도 여전히 통한다는 증거다.
헤일리 비버나 카다시안 같은 셀럽들이 에레혼 앞에서 찍힌 사진들도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브랜드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팬들은 그들을 따라 하려 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모방 심리학’을 정확히 겨냥한 전략이다.
글로벌 확장: 문화를 읽는 눈
에레혼이 해외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매장만 늘리면 될까? 절대 아니다.
먼저 온라인부터 시작한다. 현재 19개국에 온라인 배송을 하고 있는데, 이게 핵심이다. 물리적 매장보다 디지털 경험이 먼저 해외에 도달해야 한다. K-pop 스타 리사와의 콜라보가 3일 만에 2천만 뷰를 기록한 것처럼 말이다.
각 나라의 문화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전통 마크로바이오틱스와 연결하고, 한국에서는 K-뷰티와 웰니스를 연계할 수 있다. 마케팅 이론에서 말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글로벌+로컬)의 실천이다.
문화적 마케팅: 다양성이 돈이 되는 시대
코카콜라가 “Share a Coke” 캠페인으로 전 세계에서 성공한 이유를 보자. 단순히 병에 이름을 새긴 게 아니다. 각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해준 거다. 중국에서는 한자 이름을, 한국에서는 한국식 이름을 사용했다.
맥도날드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쇠고기를 완전히 빼고, 일본에서는 테리야키 버거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문화적 적응력’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기업들이 30% 더 높은 수익을 올린다.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
2025년 소비자들은 제품보다 ‘이야기’를 산다. 나이키의 “Just Do It”이 30년간 사랑받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운동화를 파는 게 아니라 ‘도전하는 삶’을 판다. 도브의 “Real Beauty” 캠페인도 그렇다. 비누 회사가 아니라 여성의 자존감을 높이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결과는? 1억 뷰 돌파와 매출 증가였다.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가짜 감동은 소비자들이 금방 알아챈다. 진짜 가치와 진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프리미엄 전략
인스타그램에서 고품질 이미지는 브랜드 인지도를 80%까지 높인다. 구찌가 틱톡에서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짤방’ 문화를 활용한 것처럼, 각 플랫폼의 특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버버리의 ‘Fully Digital BURBERRY’ 전략이 좋은 예다. 특히 중국에서 위챗을 활용한 쇼핑 경험과 틱톡에서의 감각적 캠페인으로 성공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완벽한 사례다.
에레혼의 성공에서 배울 점들을 정리해보자.
첫째, 희소성을 만들어라. 모든 곳에서 쉽게 살 수 있으면 특별함이 사라진다.
둘째, 스토리를 만들어라. 제품 기능 설명보다 고객의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셋째, 문화를 이해하라. 각 지역의 특성을 무시하고는 글로벌 성공이 불가능하다.
넷째, 디지털을 활용하라. 하지만 기술에만 의존하지 말고 인간적 터치를 잃지 마라.
가능성을 넘어선 불가능의 설계
에레혼은 리테일의 가장 순수한 실험실이다.
가성비? 없음.
확장성? 불투명.
합리성? 없음.
대중성? 없음.
이 모든 ‘없음’은 전략이다. 없음으로서 갖추고, 배제로서 집중시킨다. 그러므로 에레혼은 ‘모두를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나만의 브랜드’가 되기를 택한다. 이 전략은 브랜딩의 핵심이자, 프리미엄 브랜드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할 면도있다. 에레혼의 성공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에게 옳은 건 아니다. 건강한 음식이 경제력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짜 혁신은 에레혼의 전략을 배우되,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브랜딩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우리가 진짜로 추구해야 할 가치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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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brian@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