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면 어리석은 자는 손가락을 본다.”
동양의 고전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 문장은, 본질과 현상, 의미와 껍데기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우리는 왜, 누군가는 늘, 말의 의도와 본질이 아니라,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는가? 그들은 정말로 ‘손가락’이 중요한 줄 아는 걸까, 아니면 달을 볼 용기가 없는 것일까. 본질보다 겉껍데기에, 의도보다 단어 선택에 집중하며 상대를 질식시키는 자들. 그런 사람과 굳이 말을 섞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말은 가늠자이며, 두 사이를 잇는 다리(bridge)다. 뜻을 꿰뚫고자 할 때 말은 도구가 되고, 그 사람의 내면과 세계를 가늠하는 자(ruler)가 된다. 하지만 말꼬리나 붙들고 늘어지는 자들은 이 자(ruler)를 부러뜨리고, 다리를 끊어 버리며, 결국 본질을 가리는 안개가 된다.
이들은 ‘의도’를 보지 않는다. 왜 그 말을 했는지, 무엇을 말하려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오직 ‘어떻게 말했는가’, ‘이 단어는 왜 썼는가’, ‘그 표현은 적절한가’만을 물고 늘어진다. 누군가의 진심이 설익은 단어로 나왔을 때, 그를 다독이기보다 그의 말투를 칼처럼 겨눈다. 너 왜 그딴 식으로 말했냐고.
말꼬리를 잡는 사람의 심리와 구조가 있다. 그들은 대화의 흐름을 끊고, 상대의 실수나 애매함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마치 사냥꾼이 먹잇감의 약점을 노리듯이. 그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권력의 환상이다. 시장통 용어로 표현하면 잘난체 하려는 의도다. 말의 본질이 아닌 꼬투리를 잡음으로써, 타인을 통제하고 우위에 서려는 욕망이다.
둘째는 자기방어다.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두렵거나 불편해서, 겉껍데기에 집착하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다. 대화가 소모적으로 변하고, 중요한 논의는 진전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건 대화가 아니다. 대화의 깊이, 신뢰, 그리고 서로의 진심을 읽는 능력은 사라져 버린다.
셋째는 잘못된 구조적 훈련의 결과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틀린 것’을 지적받으며 자랐다. 학교, 회사, 사회는 정답과 오답, 실수와 성공만을 구분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자연스럽게 ‘본질’이 아니라 ‘실수’를 잡아내려고 집착한다. 그리고 말꼬리를 잡는 것이 자신의 말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습관이 되고 만다. 이들은 스스로를 ‘스마트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어리석음을 회피하려는 자다. 의도를 똑바로 응시하면, 자신의 감정과 책임도 함께 들여다봐야 하니까. 불편한 진실을 피하고 싶기에 말꼬리 뒤로 숨는다. 말투가 기분 나빴다는 핑계로, 내용을 부정하는 비겁함. 정작 마음을 다해 건넨 말을, 그저 ‘감정 상했어요’ 한마디로 짓밟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자신에게 빗대어 생각하는 ‘개인화’ 경향도 자주 나타난다.
공자도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의 뜻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의 껍데기만 본다.” 말의 의도가 아닌 ‘표현의 트집’에 집중하는 이는, 결국 타인을 이기려하거나 자존감이 없는 자다. 그 순간부터 대화는 ‘공감의 장’이 아닌 ‘통제의 장’으로 변질된다. 말의 질을 따지는 척하며, 관계의 우위를 쥐려는 은근한 폭력이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공감하고 위로하며, 성장하고 배우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할 때, 우리는 최소한의 신뢰와 기대를 품는다. 상대가 내 말의 의도, 맥락, 감정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말꼬리 잡기에 집착하는 사람과 마주 앉으면,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진다. 결국 당신은 자신의 진심이 왜곡되는 경험을 반복한다. 이것이야말로, 대화의 가장 큰 상실이다. 결국 대화 자체가 거북스럽고 피곤해진다. 이런 감정적 소진은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괜히 또 꼬투리 잡힐까 봐 자기검열이 습관이 되고, 자연스러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관계는 점점 메말라간다.
이런 대화,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내 말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이와, 왜 굳이 감정과 시간을 소모해야 할까? 이런 사람과는 굳이 맞서 싸울 필요도 없다. 더 나은 표현으로 바꾸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당신의 말이 아니라, 당신의 혀끝만 들여다볼 것이다. 지혜란 때로, ‘말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말을 던졌는데 매번 껍질만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독이 된다. 말을 섞지 말자. 관계도 섞지 말자. 그들은 대화의 장이 아니라, 논쟁의 링으로 당신을 끌고 간다. 이들과의 대화는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 당신의 에너지를, 당신의 시간을, 당신의 진심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멀리하라. 말을 섞지 않는 것이, 때론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좋은 대화란, 서로의 미묘한 의도를 읽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불안과 바람까지 꺼내보는 일이다.”
혹시 당신도, 대화에서 본질이 아닌 껍데기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의 말을 내 방식대로만 해석하고, 반복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실수를 반복하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결정이다.”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반복되는 실수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자, 변화 없는 인격과 태도의 결과다. 이제, 본질을 보는 대화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성찰과 맥락의 이해, 그리고 진심을 읽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대화의 실수를 줄이는 첫걸음이다.
말꼬리만 잡고 본질을 외면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 이상 대화가 아니다. 그들은 말의 의도가 아닌 표현의 껍데기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결국 관계를 지배하려 한다. 이런 사람과는 멀어지고, 말조차 섞지 않는 것이 지혜다. 말은 나누기 위해서이지, 휘두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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