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혹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인류사를 뒤흔든 가장 혁명적인 시스템들이 모두 ‘정체불명’의 창조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2009년, 인터넷 어딘가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이 처음 떠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한 사람인지, 그룹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가 남긴 코드, 논문, 몇 차례의 이메일…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마치 등장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처럼.
2025년 현재, 15년이 지났고, 사토시 나카모토의 디지털 설계도 위에 세상은 새로운 금융 종교를 세웠다. 21세기형 신앙, 그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지금도 그가 보유한 114만 8천 800개의 비트코인은 2025년 6월 기준 약 44조 8,032억 원에 해당한다(1BTC=3만달러, 1달러=1,300원 적용). 그의 코인을 순수 자산 가치만 놓고 본다면, 그는 단숨에 세계 13위권 안에 진입하는 초거대 부호가 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부는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2040년이면 비트코인 채굴이 99% 이상 완료될 것이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치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스스로 진화하도록 내버려두는 신처럼 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것은 자산이 아니라 상징이다. 사토시의 코인은 ‘화폐’라기보다 ‘유산’이며, ‘가치’라기보다 ‘신념’이다.
우리는 그를 본 적이 없다. 사진도, 육성도, 인터뷰도 없다. 단지 코드와 이론, 커뮤니티에 남긴 말 몇 줄이 전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믿는다. 아니, 믿는다기보다는, 그 위에 ‘신뢰’를 쌓아 올린다.
이쯤에서 나는 예수를 떠올린다.
예수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갈릴리 유대인으로 기원전 4년경 태어나 30년경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후 2000년간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르고 있음에도, 정작 그가 누구였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가 신이었는가, 인간이었는가, 혁명가였는가, 신비주의자였는가에 대한 논쟁은 2천 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는 책을 남기지 않았다. 직접 쓴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그에 대한 기록은 모두 ‘타인의 시선’이다. 그가 말한 것을 기억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한 이야기들이 경전이 되었다. 그는 기독교를 만들지 않았다. 단지, 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라짐이 전환이었다. 그의 흔적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제국이 만들어졌다. 마찬가지로, 사토시의 흔적 위에는 탈중앙화라는 신앙이, 블록체인이라는 성전이, 그리고 글로벌 시장이라는 신자들이 탄생했다.
두 인물은 말 그대로 사라진 창조자다.
움직이지 않는 자산, 밝혀지지 않는 정체, 그러나 그 존재감만은 세상을 뒤흔든다.
사토시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이제 할 일이 끝났다. 다른 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길 바란다.”
예수 또한 마지막 순간에 말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어진 이후, 사라진 이들의 자리를 메우는 것은 제자와 해석자들이다.
그리고 해석은 언제나 시스템을 낳는다.
예수의 물리적 부재가 오히려 그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추상적 이상으로 승화되면서, 수많은 해석과 적용이 가능해졌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만약 사토시가 지금 나타나서 “비트코인은 이렇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만약 예수가 다시 나타나서 “내 가르침은 이런 뜻이었다”고 명확히 한다면? 아마도 그 순간 이 두 시스템의 힘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관점에서 보면, 사토시와 예수는 개인이 아닌 ‘구조’로 기능한다. 그들의 실제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상징하는 바, 그들을 통해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비트코인은 이제 사토시 없이도 완벽하게 작동한다. 기독교도 예수 없이 2000년을 지속해왔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진정한 혁신은 창조자를 넘어서는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2040년, 비트코인의 채굴은 완전히 끝난다.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완전한 ‘유한성’의 세계.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완성이다. 마치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것은 하나의 종말이자 영원의 시작이다.
예수는 12명의 제자로 시작해서 20억 명의 신도를 거느린 종교를 만들었다. 사토시는 할 피니라는 첫 번째 사용자로 시작해서 전 세계 수억 명이 참여하는 암호화폐 생태계를 구축했다. 두 공동체 모두 위계적 조직이 아닌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다. 강제로 믿게 만들 수 없고, 강제로 비트코인을 사용하게 만들 수도 없다. 신념과 합의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조자가 사라진 후에도 공동체가 스스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예수 없는 기독교, 사토시 없는 비트코인이 각각 2000년, 15년째 지속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기술이라기보다 신화이고, 사토시는 창조주라기보다 예언자다. 그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위에 무엇이 쌓였는가다. 기독교가 예수를 통해 인간의 죄를 거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비트코인은 사토시를 통해 화폐의 신뢰를 재설계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 믿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시스템이다.

예수와 사토시 나카모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와 영역—하나는 고대 팔레스타인, 다른 하나는 21세기 디지털 세계—에 속해 있지만, 놀라운 구조적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단지 우연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유사한 이 두 인물의 접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실체는 불분명하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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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실존 인물이었지만, 그의 생애와 행적, 신성 여부는 2천 년간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직접 쓴 문서도 없고, 그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타인의 기억’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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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는 2009년 전후의 온라인 흔적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졌다. 개인인지 집단인지, 국적조차 불분명하다. 그러나 전 세계 금융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정체는 모호하되, 서사는 강력하다. 실존보다는 ‘서사적 존재’로 신화화되었다.
2. 기존 질서에 대한 급진적 도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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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유대교 제도와 로마제국 질서에 정면으로 맞섰고, 율법과 성전을 해체하는 새로운 ‘하늘나라’의 윤리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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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는 중앙은행과 국가 화폐 시스템에 맞서며, 권위 없는 신뢰 구조(블록체인)를 설계했다. 그는 “우리는 은행 없이도 거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들은 ‘기존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신뢰’를 설계했다.
3. 시스템은 남기되, 본인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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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복음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 가르침, 기억은 제자들에 의해 정리되었고, 그들이 교회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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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 백서와 코드만 남기고 사라졌고, 이후 커뮤니티가 그것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었다.
→ 중심 창조자는 사라지고, ‘해석 공동체’가 제국을 세운다.
4. 움직이지 않음으로 더 큰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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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죽음 이후 부활의 신화를 통해 오히려 더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더 이상 비판하거나, 제한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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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의 지갑 속 비트코인 100만 개는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침묵과 비움은 오히려 신뢰의 상징이 되었고, 그 자체로 ‘신성불가침’의 지위를 얻었다.
→ 부재는 존재보다 강력한 신념을 낳는다.
5. 그들의 ‘믿음 체계’는 전 세계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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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메시지는 복음으로, 교회로, 선교로 번져 나갔다. 지금은 수십억 명이 그의 이름 아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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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단순한 화폐가 아닌 철학이 되었고, 탈중앙화라는 이념은 암호화폐, DAO, 웹3 등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질서를 구축 중이다.
→ 두 사람은 새로운 문명의 설계자였다.
예수와 사토시 나카모토는 정체가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질서를 뒤엎는 혁명적 시스템을 설계하고는 스스로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신념과 해석의 공동체가 채웠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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