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없는 촉수말보다 빠른 추론은 사고다.

“그 말은 그 뜻이 아니었는데요…”

“아니,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몇 번이나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는가? 아니, 당신은 혹시 그런 말을 자주 하게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는가?

요즘 세상은 참으로 성급하다. 눈은 뜨고 있으되 읽지 않고, 귀는 열려 있어도 듣지 않는다. 대신 추론한다. 뇌가 앞서서 문장 위에 자기 생각을 덧씌운다. ‘그 말의 뜻은 이럴 거야’,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한 건 분명 이런 의도겠지’. 아직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말이 입에서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이미 자기 머릿속에서 반응을 준비한다. 거기엔 공감도, 여백도, 맥락도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말보다 추론이 빠를까? 아마도 마음속 판단이 곧 진실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너는 잘못 말한 거야’라는 오만이 있다. 진실은 언제나 맥락 속에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점 하나, 낱말 하나에 목숨을 건다.

진짜 문해력이란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말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안에 흐르는 정서를 읽어내며, 그 문장을 쓴 사람의 형편과 감정을 가늠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말 위에 자기 감정을 덧씌우지 않는다. 가볍게 판단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멈춰 선다. 한 템포 쉬어간다. “그 말, 다시 한번만 읽어볼까?”, “혹시 내가 오해했나?” 하고 자문한다. 그게 바로 사람 사이를 잇는 여백이요, 관계를 지키는 기술이다.

하지만 문해력 없는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촉수’만 발달해 있다. 상대방 말 끝에서 한 마디만 걸려도 벌써 가시를 세운다. “그게 무슨 뜻이야?”,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사실, 아무 말도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일기장에 쓴 혼잣말이었을 수도 있고, 슬쩍 던진 감탄사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읽지 않고 바로 느끼고, 느끼자마자 반응하고, 반응하고 나면 후회는 없다. 왜냐면 “난 그렇게 느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자기합리화다.

우리는 성숙해져야 한다. 상대의 말을 판단하는 건 자유지만, 그 판단을 말로 던지는 순간 책임이 생긴다. 말에는 체온이 있다. 하지만 추론에는 온기가 없다. 그러니 말보다 추론이 빠르다면, 말보다 상처도 빠르게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만든 오해의 결과다.

마음을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읽고, 생각하고, 잠시 묵상하는 시간. 그 사이에 관계가 지켜지고, 인간이 존중된다. 

“말보다 빠른 추론은 사고다.”
그건 소통이 아니라 충돌이다.

말이나 문자를 듣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섣불리 추론하고 반응하는 습관은 대부분 오해를 낳는다. 문해력 있고 통찰력 있는 사람은 섣부르게 반응하지 않는다. 읽고 멈추고 이해하는 여백 속에서 진짜 소통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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