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인간다움의 가장 낮고 깊은 자리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맹자는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선언이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본다면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달려가 막으려 할 것이다.
그 순간 머릿속엔 계산이 없다.
‘내가 이 아이를 구하면 칭찬을 받을까?’
‘구하다 다치면 어쩌지?’ 따위의 계산은
불인인지심보다 한참 뒤에 도착한다.

이 비유는 『맹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 등장한다.
맹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 본성에 내재된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사람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존재함을 주장했다.

그것은 인간 안에 ‘남아 있는 최초의 윤리’이며,
가장 원초적인 연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묻고 싶다.
그 마음, 아직 살아 있는가?

현대는 고통을 너무 많이 보여준다.
뉴스 피드 한 줄에, 영상 하나에,
수천 명의 고통이 요약된다.
그래서일까.
보면 볼수록 덜 아프고,
들을수록 무뎌진다.

불인인지심은 약해지지 않았다.
다만 감각의 과잉 속에 눌려,
무력감의 껍질 속에 갇혔을 뿐이다.

진짜 문제는,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다.
‘마음은 아프다’면서
스크롤을 넘겨버리는 우리다.

맹자가 말한 그 마음은
연민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마음이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은 감각.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시선.
그리고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그 마음은 아직 있다.
조용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는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존재다.

“불쌍하다”는 말로는
세상 하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차마’라는 마음이 행동이 되면,
그것이 윤리가 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세상을 바꾸는 큰 이상이 아니라,

단 한 번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순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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