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회사로 초대했다. 잠간의 인사와 안부를 나눈후 노트북이 열렸다. “사업을 시작하는데 너같은 신뢰할만 인물, 새롭고 신선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곧 “나의 인생 즉, 경험과 관계를 통해 라인을 만들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 친구와 나 사이의 공기가 바뀌었다. 반가움이 계산이 되었고, 대화가 프레젠테이션이 된다. 나는 그 장면이 불편했다. 이유를 풀어보자.
다단계의 핵심은 ‘관계의 수단화’다. 원래 관계는 선물과 신뢰의 교환에 가깝다. 너와 나 사이에 오가는 밥 한 끼, 도움 한 번, 전화 한 통이 작은 빚과 고마움을 만들고, 우리는 그 빚을 서서히 갚으며 관계를 키운다. 다단계는 이 흐름을 역전시킨다. 신뢰가 먼저가 아니라 상품이 먼저, 안부가 먼저가 아니라 소개 링크가 먼저다. 그래서 거절이 더 어렵다. “너라서 들어준 건데”라는 말 한마디가 정情을 올가미로 바꾼다.
그 다음은 언어의 문제다. 다단계에서 자주 듣는 단어들—자유, 부, 패시브 인컴, 리더, 시스템—은 사실 정해진 뜻이 없다. 그러나 그 모호함이 매력처럼 작동한다. “곧 자유로워질 거야”, “시스템만 따라와” 같은 말은 구체가 빈자리다. 빈자리는 사람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사람은 각자 원하는 풍경을 그 빈칸에 그려 넣고, 그걸 믿는다. 믿음이 커질수록 질문은 줄어든다.
심리 장치도 정교하다. 남들이 다 한다는 이야기(사회적 증거), 지금 아니면 놓친다는 압박(희소성), 여기까지 왔으니 끝을 보자는 심정(매몰비용), “나도 할 수 있다”는 낙관이 합쳐진다. 우리는 손해를 보기 싫어서, 이미 쓴 시간과 돈을 지키려 더 깊이 들어간다. 이때 필요한 건 계산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계산기는 차갑지만, 인간은 따뜻해서 더 취약하다.
구조적으로도 우아하지 않다. 수익의 중심이 제품 판매가 아니라 사람 모집에 쏠리면, 위에 있는 소수와 아래에 다수의 차이가 급격히 커진다. 꼭대기로 올라간 몇몇은 “증명된 시스템”을 말하고, 대부분은 “조금만 더”를 말한다. 여러 나라 조사에서 다수 참여자가 손실을 본다는 보고가 많지만(근거 부족: 구체 수치·출처 미확인), 내 경험의 범위에서 보아도 수익의 경험담은 희귀하고 동기부여의 언어만 넘친다. 말이 현실을 가려버리는 순간, 구조는 더 오래 버틴다.
왜 이런 방식이 반복될까. 첫째, 경제가 불안정할수록 ‘빠른 사다리’의 유혹은 커진다. 승진의 속도는 느리고 임대료는 오르는데, 다단계의 약속은 즉각적이다. 둘째, 외로움 때문이다. 우리는 소속되고 싶다. “가족 같은 팀”이라는 말은 가족이 부족한 사람에게 정확히 닿는다. 셋째, 의미의 결핍. 일이 단순히 생계가 아니라 정체성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 시대에, 다단계는 일을 신앙처럼 포장한다. 주간 모임, 리더의 간증, 목표와 언약. 예배 형식을 닮은 비즈니스는 강력하다. 그 앞에서 개인의 판단은 집단의 열기에 쉽게 묻힌다.
여기서 선을 그어야 한다. 모든 직접판매가 문제는 아니다. 좋은 제품을 정가에 팔고,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두며, 수익 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한 모델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것은 태도와 철학이다. 관계를 숫자로 환산하고, 질문을 ‘부정적 에너지’로 처리하며, 실패를 개인 의지의 문제로만 돌리는 세계관. 이 철학은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한계를 지워버린다. “하면 된다”는 말은 때때로 “왜 이렇게 설계됐는가”라는 질문을 가린다.
나는 장사를 존중한다. 누군가가 만든 좋은 것을 소개하고, 그 대가를 받는 일은 정직하다. 다만, 돈이 관계 위에 올라타는 순간, 관계는 부서진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꼭대기만 성공이 아니다. 각자의 속도와 방향, 그 사람이 지키고 싶은 가치가 함께 있어야 성공이다. 그래서 다단계식 마인드—모집 중심, 언어의 과장, 질문의 억압, 관계의 수단화—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연락처 목록을 바라볼 때,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가, 가능성 있는 고객의 등급이 먼저 떠오르는가. 누군가의 “함께 가자”는 초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어줄 것인가. 오늘 당신의 대답이 내일의 관계를 만든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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